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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엘이인터뷰 쿤디판다 (Khundi Panda)

한국힙합위키
BOSS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10월 15일 (금) 11:40 판 (새 문서: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8.10.08 21:28추천수 2댓글 9 thumbnail.jpg 누구나 가면을 쓰며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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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8.10.08 21:28추천수 2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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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면을 쓰며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치부가 드러나 밑보이고 싶지 않아서, 원하는 상처럼 보이고 싶어서, 목적이 뭐가 됐든 우리 모두가 그렇게 역할 놀이를 하며 살아간다.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쓸 수 있는 가면도 많아지고, 가면을 쓰는 속도도 빨라진다. 자연히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 순간은 점차 줄어들기 마련이다. 어쩌면 쿤디판다(Khundi Panda)라는 래퍼가 매력 있게 다가오는 건 그 때문이 아닐까. 그는 '스스럼없음'에 갈급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마냥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처럼 여겨질 것이다. [재건축], [쾌락설계도], [부산물], [농], 그리고 현재 한창 준비 중이라는 첫 개인 정규작 [가로사옥]까지, 실망할 여지가 없는 이가 되고 싶다며 지난 2년간 네 장의 규모 있는 작품을 내놓고도 바로 다음을 준비하는 스물두 살 쿤디판다의 독하다 싶을 만큼 진솔한 이야기를 잔뜩 듣고 왔다.




LE: 우선, 힙합엘이 회원 분들에게 간단하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K: 안녕하세요 쿤디판다라고 합니다.



LE: 첫 질문부터 조금 그렇긴 한데 (웃음), 요즘 <쇼미더머니> 시즌이에요. 보고 계신가요?

보고 있어요. 예능으로서 재미있는 거 같아요. 근데 사실 예전보다 재미있지는 않아요. 저는 시즌 2랑 5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저는 시즌 5에 나갔었는데, 제가 엑스트라로 사용되었는데, 다 떠나서 프로그램의 드라마에서 엑스트라로 사용된 사람들이 엑스트라로 사용될 만했던 거 같아요. 그때는 주인공 같은 사람이 나와서 주인공으로 우승을 하는, 그런 드라마가 너무 좋았던 거 같아요.



LE: 그쯤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SNS에 장문의 글을 남기신 적도 있고, <쇼미더머니> 참여를 전후로 생각이 바뀌셨다고 알고 있어요. [쾌락설계도]에서도 그런 측면이 보이기도 했구요.

그 글을 쓴 건 정확하게는 <쇼미더머니> 시즌 5 이후인데, 원래는 시즌 6도 나가려고 했어요. 왜냐하면, 시즌 5 때 제 이미지가 너무 한순간으로 소비된 게 불만이었거든요. 시즌 6 지원할 때까지만 해도 제 생각이 어땠냐면, ‘방송으로 망친 이미지는 방송으로 다시 잡아야 한다’였어요. 다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그간 공부해왔던 방송 특성상 캐릭터도 확실히 잡아야 하고, 머리도 화려하게 하고, 옷도 잘 입어야 하고, 랩 스타일도 경연에 맞춰서 해야 할 것 같더라구요. 그런 것들을 억지로 맞추려다 보니까 제가 아닌 거 같더라구요. 그러던 차에 화나 형의 [FANACONDA]가 나왔는데, (제가 화나 형의) 오래된 팬이기도 하고, 저에게 처음으로 공연 기회를 주고, 저 같은 아마추어들을 계속 도와주려고 하는 형이 그런 앨범을 냈다는 게 (마음을 움직였어요). 특히나 “Power” 같은 경우에는 그 형이 사석에서 저랑 만났을 때도 내가 좀 더 힘이 있었다면 너 같은 친구를 도와주는데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던 게 떠오르더라구요. 그래서 장문의 글을 쓰고 안 나가게 된 거죠. 그렇다고 해서 <쇼미더머니>를 마냥 안 좋게 본다고 하기도 그래요. 특히나 요즘 들어서는 사람들이 되게 쉽게 쉽게 ‘옛날 때가 좋았어’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적어도 파이는 옛날보다 커졌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올바르게 가고 있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요. 장단점이 각각 분명하게 있지 않나 싶어요. 사실 이제 슬슬 재미없을 때 됐으니까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웃음)



LE: <쇼미더머니>라는 게 아무튼 현재 한국힙합 씬에서는 어떤 큰 기준이잖아요.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부터 어떤 애티튜드를 가지느냐까지 말이죠.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와 결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구요. QM 씨 같은 경우에는 “?uestion Mark”에서 그에 관한 가사를 쓰기도 했구요. <쇼미더머니>에 안 나가는 걸 자기 이미지로 활용하고, 그걸 사람들에게 어필하려고 하는 아티스트도 있는 거 같다고. 쿤디판다 씨 같은 경우에는 힙합 팬들에게 비교적 반(反) <쇼미더머니> 적인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있지 않나 싶어요.

저는 무조건 반 <쇼미더머니>인 건 맞아요. 이제 절대 안 나갈 거니까. QM 형의 그 가사가 나오는 곡이 형이 VMC에 들어갈 때 입단곡이잖아요. <쇼미더머니> 까는 것도 컨셉이라고 하는데, 영상상에서는 오디(ODEE) 형이 그걸 까는 거도 또 하나의 컨셉이라고 하면서 무한 컨셉의 고리를 만들죠. 근데 저는 그런 거까지 컨셉으로 치부하는 건 모르겠어요. 양심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어떤 선택을 할 때, 우리가 실리를 따지잖아요. 무언가를 골랐을 때 다른 것이 큰 지 작은지를 보는데, <쇼미더머니>를 안 나간다고 선택하는 게 <쇼미더머니>를 나가는 거보다 실리가 클까요? 저는 아닌 거 같아요. 뭐, 너무 막무가내로 안 나간다고 했을 수는 있지만, 진짜 안 나가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은 자기한테 어떤 더 큰 정신적인 이득이 있겠죠. 저는 그 진심을 믿고 싶어요.



LE: 그럼 본인은 지금 어떠한 대의에 따른 선택을 하는 건가요?

그런 게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는 일단 개인주의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문화와 저를 선택하라 하면 저는 저에요. (웃음) 전 사실 아직 풋내긴데, 저부터 커야 할 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제 생각에 저는 만약 <쇼미더머니>를 나가서 잘 되면 ‘내 음악은 향후 몇 년 동안은 방송빨로 먹고 살겠지. 음악만으로 감상은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할 사람인 거 같아요. 방송에 나와서 잘 안 돼도 ‘아, 방송이 날 엿 먹였어’라고 이야기할 사람이구요. 그래서 안 나가는 거기도 해요. (웃음) 요즘은 그래요.



LE: 만약 시즌 5 때 2차를 넘어서 더 많이 올라갔다면 지금 쿤디판다라는 뮤지션과 그 뮤지션이 하는 생각은 달라졌을까요?

그게 사실 제가 준비하는 개인 정규 1집에 들어가는 얘기에요. 저에게 분명히 여러 가지 기회가 있었어요. 특히나 대외적으로는 <쇼미더머니> 시즌 5 때죠. 제가 좀 더 훈련이 돼 있었다면 어떻게 더 잘됐겠죠. <쇼미더머니> 참가자 사이에서는 2차 때쯤 되면 어느 정도 네임드인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전우애가 생겨요. 끝나고 술도 같이 먹고 그러는데, 저도 (술자리에) 몇 번 꼈어요. 근데 어느 순간 보니까 제가 유명한 형들 사이에 껴서 꼽사리 끼려 하는 사람 같더라고요. 실제로 홍대 클럽 가서 보면, ‘어! 누구누구다!’ 하는데, 그 옆에 누군지 모르겠는 사람들도 덩달아 인기 많은 거 있잖아요. 제가 그런 꼴로 보이긴 싫었어요. 저는 주인공 콤플렉스가 강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고민했었죠.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면, 가정을 되게 많이 했어요. ‘내가 그때 <쇼미더머니>에서 잘됐으면 어땠을까’ 근데 잘됐으면 [재건축]이 안 나왔겠죠. 어차피 기록된 역사에 가정은 없거든요. 그래서 지금 저는 향후 미래만 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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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주인공 콤플렉스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이제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죠. 일단 힙합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나 계기가 궁금한데요. 여타의 분들과는 조금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지고 계신 거 같아서요. 그만큼 랩, 힙합 음악을 하게 된 계기나 배경도 독특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딱히 독특하진 않을 수도 있는데요. 제가 중국에 유학을 갔었어요. 2004, 5, 6년 이때쯤이었는데, 약간 유학 붐이 일어났던 시기였어요. 저도 그 물결에 휩쓸린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이 ‘다들 가니까 너도 가야지’ 이런 건 아니고 선구안이 있으셔서 중국으로 보냈는데, 거기 있던 한국 친구들이랑 어울리다가 따돌림을 당했어요. 어떠한 사유로 인해서 되게 억울하게 당했어요. 그때 저와 같이 놀던 친구가 에픽하이(Epik High)를 들려줬어요. 에픽하이 분들 가사를 보면서 위로가 많이 되더라구요. 이렇게 비유해도 되나 싶은데, 다이나믹듀오(Dynamic Duo) 분들이나 타이거 JK(Tiger JK) 이런 분들의 음악은 되게 한국식으로 얼큰한 느낌의 감동을 준다면, 에픽하이는 일본식의 몽환적이고 따뜻함을 가져왔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에픽하이가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그때 들었던 게 에픽하이의 “One”, “Fly”, “Paris”, “Swan Song”, 그러니까 [Swan Songs]랑 “낙화 (落花) “가 있는 [Pieces, Part One]을 많이 들었어요.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앨범에 피처링한 사람들도 알게 됐죠. “Still Life”로 치면 소울 컴퍼니(Soul Company) 형들 피처링이 있잖아요. 들으면서 나중에는 (가사를) 써보고 싶어져서 써봤죠. 그러다 학년이 점점 올라가면서 따돌림당했던 게 사그라질 때쯤에 다른 친구들 중에 소울 컴퍼니 광빠들이 있는 거예요. 그 친구들이랑 저랑 동아리 수준의 크루를 만들었는데, 그게 제 인생 첫 크루였어요. 나중에 한국에 와서 음악을 진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나는 군인이다>인가? 무슨 캠페인이 있었어요. 그 당시에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기서 따온 건데, 국방의 의무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서 일반인들 범위에서 경연을 하는 캠페인이었어요. 탑10을 뽑아서 본선을 상상마당에서 했었는데. 제가 10위에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 쿤디판다로 상상마당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했었죠. 그때는 엄청 못했어요.



LE: 그때가 몇 살 때쯤이었나요?

열여덟 살 때였을 거에요. 그때 게스트로 로꼬(Loco) 씨가 오셨거든요. 자이언티(Zion.T) 씨도 오셨구요. 저는 엄청 신기하고, 자극을 받았어요. 존재 자체로 자극이 되는 거 있잖아요.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멋있어져야지’라고 생각한 거죠. 그렇게 하나둘씩 하다가 인터넷에서 활동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LE: 중국에서는 몇 살부터 몇 살까지 유학 생활을 하셨던 건가요?

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갔어요. 중국 국제부는 아마 1학기가 당겨지거나 미뤄져요. 저는 앞선 편이었어요. 4학년으로 들어갔을 거예요. 3학년 2학기가 인생에 없던 거죠. 그때는 그냥 4학년으로 들어갔는데, 한국으로 편입해서 돌아올 때 다시 1학기가 당겨지면서 고등학교 1학년을 끝내고도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부터 다시 시작한 거죠. 한 8년 정도 있었던 거 같아요.



LE: 어느 정도 이야기 해주시기는 했지만, 사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쿤디판다 씨에게 유학 생활에 관해 자세하게 물어봐야겠다 싶었는데요. 뭐랄까, 개인의 역사에서 좋은 기억이 아닐지라도 큰 기억이었던 거 같아서 말이죠. 더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모든 추억은 보정이 되잖아요. 결과적으로 좋았다고 얘기할 만한 게 많으면 나중에 좋게 포장되겠죠. 반대라면 나쁘게 포장될 테구요. 그 안에서 냉정하게 생각해도 나쁜 점, 좋은 점이 다 있었어요. 혼자서는 나름 낭만적이었거든요. (웃음) 일단 제가 거주했던 곳은 상해였어요. 제가 살던 동네는 한국인들이 꽤 많았어요. 길을 무작정 나가면 50%가 한국인이었어요. 이게 어떤 의미냐면, 거기서 작정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언어가 늘 수가 없어요. 대부분 한국 친구들은 그랬던 거 같고, 저도 처음에는 안 늘었어요. 다만, 저는 따돌림을 당하면서 반강제적으로 다른 언어를 쓰는 친구들을 사귀어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력이 는 거 같아요. 사실 언어 쪽으로는 제가 어느 정도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빨리 습득하기도 하고, 발음이 꽤 괜찮더라구요. 물론, 그래도 한국 친구들이 제일 좋았죠. 정서적으로 맞았거든요. 유머 코드 자체가 중국 애들은 제가 여기서 왜 웃는지 전혀 모를 때 웃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일본 애들은 또 너무 순수하고 운동 엄청 좋아하구요. 맨날 점심 시간에 피구하구요. 맨날 도시락 싸와서 자기네끼리 운동장에서 먹구요. 근데 학교도 결국은 작은 사회잖아요. 어느 정도 서열 정리가 있는 거죠. 한국 애들 사이에서는 소위 말하는 일진과 찐따가 있었어요. 일진이 되는 방법은 간단해요. 싸움을 잘하거나 덩치가 크거나, 엄청 웃기든가. 유학을 왔으니 돈은 비등비등해서 돈을 제외하고 나머지 요소로 잘 나갈 수 있었어요. 그 사이에서 제가 왕따 당한 사유는 너무 길어서 못 얘기하겠는데, 아무튼 억울하게 당했어요. 그걸 만회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 저는 혼자서 가사 쓰고, 카피 랩하고 그랬죠. 그때는 다들 카피랩을 조금씩 했었어요. 다이나믹듀오의 “고백(Go Back)”, “죽일 놈 (Guilty)”.

아, 이 얘기를 드려야겠구나. 커뮤니티가 크지도 작지도 않았는데, 일요일마다 항상 한인 교회에 갔어요. 교회에 가면 학교에서 보던 그 친구들이 똑같이 있어요. 엄청 큰 교회인 연합 교회에는 청소년부가 따로 있는데, 청소년부에 가면 항상 그랬어요. 저는 따돌림을 당하고 나서 그게 너무 괴로운 거예요. 나중에는 사람들이 자주 안 가는, 청소년부에 2, 30명 밖에 없는 은혜 교회라는 곳에 갔어요. 지금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는데, 교회에 새로 가면 새로운 가족이 왔다면서 예배 다 끝나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게 하고 선물을 줬어요. (제가) 소개하고 취미를 이야기하는데, 그땐 랩밖에 안 들으니까 랩 좋아한다고 했죠. 근데 찬양 팀에 있는 기타 치는 말끔하게 잘생긴 형이 끝나고 저를 부르더니 자기가 버스킹 공연을 조금 하는데, 랩이 필요한 게 있다면서 도와줄 수 있냐고 하더라구요. 그때 “죽일 놈 (Guilty)” 같은 거 하면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근데 알고 보니 그 형이 한인 학생들 사이에서 꽤나 잘나가는 형이었던 거예요. 형이 저를 끼고 있다고 하니까 노골적으로 ‘쟤 누구누구랑 다닌대’ 이러진 않지만, 기류가 있잖아요. 그때부터 이상하리만치 애들이 저한테는 어느 정도 경계를 풀더라구요. 그렇게 학년이 지나면서 (애들이) 저를 왕따인 이상한 애로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세상에 빠져있는 애 정도로 두더라구요. 그래서 랩, 힙합이 저에게 뭐였냐고 하면, 그 친구들이 저를 함부로만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어떤 권력이었던 거 같아요.



LE: 앞서 언어 구사 능력을 습득하려면 한국인들 사이에서만 있으면 안 된다, 그 안에만 있으면 제대로 배우기가 힘들다고 얘기하셨는데요. 그 이야기를 하실 때 문득 “국제도시”가 떠오르더라구요. 사실 곡이 처음 나왔을 때는 언뜻 메킷레인 레코즈(MKITRAIN Records) 분들을 겨냥한 건가 싶은 느낌도 있었는데요.

정확히는 둘 다 노린 거예요. 한국에 와서 (중국에서 같이 유학했던 친구들) 몇 명이랑 연락하거든요. 연락이 오면 받는 입장이고, 제가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어쨌든 그 친구들은 대부분 경희대 이상으로 갔어요. 제가 유학 간 친구들을 다 일반화해서 싸잡아서 욕하고 비방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특례 전형이라는 게 있어요. 3년 특례가 있고, 12년 특례가 있어요. 일반 수능을 볼 수는 없으니까 중국에 유학 간 연수를 따지는 거죠. 3년 특례는 고등학교 생활 3년만 하면 되고, 12년 특례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있으면 돼요. 12년 특례는 무조건 상위권 가구요. 근데 웃긴 건 3년 특례도 중상위권은 가요. 경희대 같은 데도 내신만 잘 받으면 가능하죠. 웃긴 게 내신이 뭐냐면,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잘 보고 그 학교에 기록되는 학점이잖아요. 대부분 한국 애들은 그걸 컨닝했어요. 저는 그 답을 알려주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대부분 경희대 이상으로 간 거죠.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꼴에 유학 갔다 왔다고 언어도 제대로 못 하는 애들이 속은 유학파가 아닌데 경희대 가서 완벽하게 유학파가 된 거예요. 그때 제가 한창 음악적으로 ‘교포라는 게 도대체 뭐지?’라는 의구심을 가지던 때라 잘 맞아떨어졌던 거 같아요.

메킷레인 레코즈 분들을 특정 대상으로 지목한 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맞기도 한데요. 항상 그렇듯이 교포 바이브는 있었어요. 그 바이브가 어떤 건지 대충은 알겠는데, 그걸 정확히 묘사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 도시에 살다 왔음을, 그 도시를 일컫는 가사는 있는데, 그래서 정확히 그곳에서의 삶을 얼마만큼 녹여냈냐고 하면 저는 모르겠거든요. 영어로 떡칠 돼 있을 뿐이구요. 저는 그걸 들을 바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외국 래퍼들을 듣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더 리얼리스틱하거든요. 힙합엘이 자막 뮤직비디오 보는 게 나아요. 그러면서 또 웃긴 건 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는 마치 유학생 애들처럼 (외국에 다녀왔다는 걸) 내세우고 싶어 하는 거죠. 저도 3개 국어를 할 줄 알지만, 중국어는 비교적 딸리는 편이에요. 제가 어디 가서 중국어를 자랑하지는 않아요. 그걸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좀 그랬던 거 같아요.



LE: 가사나 곡 제목을 보면, 예를 들면 [재건축] 같은 경우에는 가사가 거의 다 한글이었던 거 같아요. 근데 또 [쾌락설계도]에는 영어도 많이 등장하더라구요. 물론, 한 라인에서 영어와 한국어가 같이 등장하지는 않고 파트별로 구분을 두는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요.

그걸 노렸어요. ‘한국인이면 한국 랩을 해야지, 무슨 영어 랩을 하냐’ 이런 건 아니에요. 한국인이 듣는 음악을 만든다면 한국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걸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제가 [재건축]과 [쾌락설계도]에서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 차이점을 두면서 의도를 했던 건, 한국어 가사는 제가 진짜 전달하고 싶은 거였어요. 영어는 어느 정도 일부러 분리해서 연주 같은 느낌이었으면 했어요. 비트와 혼합된 다른 형식의 스킷 같은 장치로 사용하려 했어요. 소리적으로만 접근하려 했어서 많이는 넣지 않았어요. [쾌락설계도]에서 영어 가사가 등장하는 건 2번 트랙 “음주각본”에서 첫 번째 파트인데요. 그 부분도 뒤에 나오는 “개미”로 넘어가기 전에 “음주각본” 마지막 벌스의 연결 장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차라리 한국어로 쓸 걸 싶기도 해요.



LE: 한영혼용을 완전하게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나름의 태도가 있으신 거처럼 보이네요.

가독성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해만 할 수 있다면 (괜찮아요). 근데 대부분 영어 가사들은 요즘 쓰이는 ‘Lit’, ‘Flex’ 같은 시쳇말들이죠. 식상하고 별 뜻도 없어요. 한국어로 치면 ‘존나’, ‘쩔어’죠. 사대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 덧붙이자면, 장단점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보통 한국에서는 미제가 좋고, 흑인은 남다르다고 생각하잖아요. 유튜브 개그맨인데, ‘스타벅스(Starbucks)에 갔다가 빡친 흑형’ 이런 레전드 영상이 있잖아요. 거기에 닥터 드레(Dr. Dre)의 “Still D.R.E.”를 입혀서 흑형은 말할 때도 비트를 틀면 랩이 된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걸 더콰이엇(The Quiett) 씨 인터뷰에 입혀본 적이 있었는데, 랩이 되더라구요. 그런 것처럼 너무 맹목적으로 한국 거보다는 미국 거가 낫다고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평생 노예근성으로 살아가는 거죠.




LE: 메킷레인 레코즈 같은 경우에는 겨냥 안 한 듯 결국 한 거라고 하셨는데요. 디스를 예전에 꽤 많이 하셨잖아요. MC 메타(MC Meta) 씨도 있고, 심바 자와디(Simaba Zawadi) 씨도 있구요. 좀 후회한다는 얘기를 들은 거 같아요.

후회한다기보다는 더 똑똑하게 움직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그때 어땠냐면 무조건 제가 이겨야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지금 제게 이기고 말고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고 누가 더 좋은 앨범을 내냐가 문제에요. 근데 그때는 제가 이 사람보다 벌스 하나만 더 죽이게 써도 이기는 거라고 유치하게 생각했던 때였어요. 그 정도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욕을 했던 거죠. 심바 자와디 형과 있었던 일은 사실 오해였어요. 그 형이 그때 “Come Back Home”에 얽힌 일이 있었잖아요. 그 후에 형이 인터뷰를 했었는데, 거기서 “이때 시기를 이용해서 MC 메타를 디스하는 사람도 있었고.”라고 했었어요. 그게 쿤디판다가 시기를 이용해서 MC 메타를 디스하고 자기 이미지를 올린다는 뜻이 아니었는데,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거죠.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까 전혀 아니었어요. 그 형은 저보다 훨씬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지금은 제가 누구보다 더 믿는 사람이에요. 근데 나머지 사람들한테는 그 당시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할 거 같아요. 지금 상태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한두 번은 참았겠죠. 한 번 더 생각하고 진짜로 내가 이걸 무조건 해야 할까 싶었겠죠.



LE: 심바 자와디 씨 얘기가 나왔는데, 예전 인터뷰를 보니까 한국힙합 씬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주변에 동지가 없다고 말씀하신 걸 본 거 같아요. 심바 자와디 씨를 포함해서 지금은 동지가 조금 생겼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인터뷰를 할 때도 제가 좀 막연한 혁명을 꿈꾸었던 거 같아요. 지금도 바로잡아야 할 점은 많은 거 같아요. 근데 꼭 저랑 같이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밸런스만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전체적으로 모든 아티스트에게 공평한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생각은 있어요.



LE: 순전히 본인 뜻대로 한다면 어떻게 확 바뀌었으면 좋겠나요?

일단 공연 문화가 다시 살아야죠. 이젠 힙합 공연을 아무도 안 와요. 저도 예정되어 있던 게 몇 개 있었는데, 예매율이 저조해서 계속 취소되고 있어요. 심지어 그 라인업에 저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사람들이 찾게 되는 건 취소가 안 되는 공연뿐이겠죠. 그런 공연은 거의 클럽 공연, 혹은 페스티벌이구요. 근데 페스티벌과 클럽 공연으로 공연 문화가 되살아나진 않아요. 페스티벌 같은 경우에는 하루를 잡고 하는 일종의 행사 같은 거지, 그 페스티벌 안에서 딱히 단합력이 좋다는 생각이 안 들거든요.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만 보고 가구요. 사실 저 같아도 라인업이 그렇게 많은데 다 안 봐요. 삘 타면 엄청 오래 해서 온종일 할 때도 있는데, 과연 그게 공연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포인트가 될까 하면 전 아닌 거 같아요. 다 같이 놀고 즐기자 하는 카스 맥주 축제 같은 느낌이 떠올라요. 제가 한국에 처음 와서 본 공연이 ‘ADVMC’라는 공연이었어요. 그때 ADV 크루랑 VMC 크루가 같이 하고, 라인업으로 섹시 스트릿($exy $treet), 게릴라즈(GUE) 크루도 왔었어요. 제가 거기서 알던 사람은 별로 안 돼요. 제가 ADV를 좋아하긴 하지만, JJK 형 좋아하고, 올티(Olltii) 형 좋아하는 정도였고, 나머지는 몰랐어요. 게릴라즈도 믹스테입 하나 나온 거랑 뮤직비디오 하나 본 게 전부였구요. 섹시 스트릿은 전혀 몰랐어요. 근데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 즐기고 왔단 말이에요. 세 시간 반 정도 했는데, 저는 그때 모든 게 너무 좋았어요. 프리즘홀(Prizm Hall)에서 했으니까 큰 공연은 아니었는데, 관객이 꽉 찼었어요. 저는 그때 힙합 공연이 이렇게 멋있는 거였구나 생각했어요. 요즘은 너무 골라 먹는 회전초밥 같은 식이니까. (웃음) 클럽 공연은 바닥 손님들이 있고, 한 번 들렀다가 나가는 게 클럽이라 자연스럽잖아요. 제약이 덜 있는 만큼 산만하단 말이에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소공연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낯설어하지 않는 문화가 첫 번째일 거 같아요.



LE: 쿤디판다 씨는 개인적으로 계획 중이신 공연이 특별히 있을까요?

저는 저부터 잘 돼야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까 말했던 게 다 말짱도루묵이 돼버리는 거 같지만, 저는 티켓 파워가 없거든요. 제 티켓 파워를 불리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이 사람 공연은 엄청 좋으니까 무조건 가야 해’라는 인식이 생기고 나서 공연에 맛을 더하고 싶어요. 바꾸어서 말하면, 앞서 제가 말했던 것들이 제가 X도 아니면 전혀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거든요. 일단 저부터 파이를 키워서 이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LE: 쥬스오버알코올(juiceoveralcohol)이나 보석집 멤버 분들과 같이 공연을 해도 나름 브랜드로서 자리 잡고,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두 가지가 있는데요. 일단 쥬스오버알코올 쪽은 플레이어들끼리 결이 다른 느낌이에요. 냉철하게 판단했을 때는 오르내림(OLNL) 빨이 너무 커서… (웃음) 제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해요. 오르내림은 진짜 공연 매진이 잘 돼요. 쥬스오버알코올이라는 이름을 달고 단독 콘서트를 하면, 아마 잘 되긴 할 거예요. (오르내림이) 이번에 <쇼미더머니>에서도 잘하고 있으니까요.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지금 하면 안 돼요. 그럼 똑같이 골라먹는 재미가 돼버리는 거예요. 일단 집단적인 브랜딩이 되어야죠. 두 번째로 보석집. 보석집으로는 계속 생각은 하고 있는데, 최근에 <힙합플레이야 쇼>에 갔다가 엄청 겁을 먹었어요. 라인업이 엄청 화려한데 매진은 안 되더라구요. 보석집 멤버들한테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많지만, ‘<힙합플레이야 쇼>도 이런 마당에 큰일 날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도 계속 부딪히긴 해봐야죠.



♬ 오르내림 - juiceoveralcohol


LE: 그 두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신 게 사실 특이하다 하면 특이한 게, 쿤디판다 씨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정체성을 분리된 느낌이기도 해요. 쥬스오버알코올 같은 경우는 퓨처 바운스를 비롯해서 사운드적으로 트렌디한 접근을 하는 거 같구요. 쿤디판다 씨를 이야기할 때는 종종 골드링크(GoldLink)가 언급되기도 하죠. 보석집 같은 경우에는 앞서 좋은 앨범을 만드는 게 지금의 문제라고 하셨던 것처럼, 컨셔스한 측면이 강한 거 같아요.

쥬스오버알코올 사람들과 크루를 결성할 때쯤만 해도 제가 퓨처 바운스 기반의 음악에 꽂혀 있었어요. 지금은 그것만 하지 않지만, 그래도 (저에게) 쥬스오버알코올이 필요한 이유는 제 개인 커리어에서는 그런 음악을 안 하거든요. 해소할 구멍이 필요한 거죠. 다만, 보석집 같은 경우에는 제가 음악적인 방향을 잡고 나서 만들어진 집단이기 때문에 되게 필요하죠. 그래서 제 개인적인 음악의 결은 보석집에 가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제가 아예 그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잡아주는 게 쥬스오버알코올이죠.



LE: 퓨처 바운스에 가까운 음악을 개인 커리어에서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음악은 재미있어야 하거든요. 근데 퓨처 바운스적인 음악에 대한 재미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일단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기도 했구요. 사운드클라우드만 뒤져봐도 오토튠을 써서 그런 건지 대부분 잘해요. 근데 다들 비슷해서 특색을 못 느끼겠고, 그 전에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게 재미가 없더라구요. 제가 봤을 땐 심오한 가사를 쓸 수도 없구요. 더 깊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려고 해요.



LE: 쥬스오버알코올은 집단의 정체성이 예전이랑 좀 달라졌나요?

다들 퓨처 바운스 쪽으로 취향이 가있긴 한데, 틀은 약간씩 달라요. 아까도 얘기했듯이 제 개인적인 음악은 이제 쥬스오버알코올에 끼기 좀 어려울 수도 있어요. 아카시(ACACY)형은 오토튠의 요소를 너무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퓨처 베이스를 잘할 수 있지만, 그 형은 지금 트랩 쪽으로 가 있구요. 근데 트랩이랑 퓨처 바운스가 사실 그렇게 결이 다르지는 않죠. 아무튼, 저처럼 샘플러를 기반에 둔 붐뱁을 하진 않죠. 오르내림은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둬도 될 거 같아요. 나머지 사람들은 다 (퓨처 바운스에) 꽂혀 있는 거 같은데, 저는 적어도 여기서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는 생각해요. 저희가 처음 등장했을 때 오르내림도 신선했고, 아카시 형도 신선했지만,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저희처럼 퓨처 베이스 잘하는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또 모이게 되면 더 훌륭한 개량종들이 나올 거니까요. 그 개량종들에게 무너지지 않으려면 저희가 움직여야죠.



LE: 그 점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부산물]의 스타일이 달랐던 거겠네요.

그렇죠. [쾌락설계도]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소위 말하는 칠한 거를 섞었지만, [부산물]에서는 거의 안 섞었어요. 사실 안 섞은 이유가 꼭 의식해서라고 하기에는 좀 그래요. 그냥 지금 [부산물]의 느낌이 더 좋았어요. 막 화음 쌓고, TV 느낌을 내려고 하는 게 훨씬 재미있고 심오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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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지마인드(Easymind), 델런 아푸즈(Dellan Afuz)라는 분들이 만드신 비트들이 인상적이었어요. 크루 얘기를 한참 해봤는데, 예전에는 퍼푸라 에틱스(Purpura Ethics)에서 리더 역할을 하셨나요? 꽤 끈끈한 집단처럼 보였는데요.

제가 만들었어요. 그 당시에 저희 눈에 보였던 플레이어들의 세계에서는 사실 지금 제가 만나는 사람들도 엄청난 프로로 보였어요. 그 아래에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그러니까 각광을 덜 받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여러 부류가 있었는데요. 그 크루들이 다 획일화된 느낌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랩 크루, 힙합 크루면 이렇게 해야 하고, 뮤직비디오 이렇게 내야 하고. 주제도 되도록 센 주제를 고르구요. 단체곡도 너무 뻔하구요. 저희는 그런 거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걸 만들자고 했어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성 자체가 움직이잖아요. 자체적으로 동력이 있는 거죠. 그래서 애초에 모을 때부터 비트메이커 먼저 모으고, 래퍼 한 명 더 모으고. 아트워크하는 친구 모으고 그랬죠. 저는 우리 프로젝트를 내야 하고, 개개인의 소개작을 내야 한다고 아이디어를 냈었어요. 손 그림을 그려서 커버를 만드는 더프 파블로(Duf Pablo)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보고 네가 가능하다면 수고스럽더라도 우리가 부흥하기 위해서 크루 소개작으로 내는 제 개인 곡과 다른 친구들이 내는 개인 작품의 커버를 다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었어요. 믹싱, 마스터링도 저희들이 다 하려고 했구요. 남들과는 다른 걸 하고 싶었어요. 그때도 좀 힙스터적인 기질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비트메이커로 폴(PAUL)이라는 친구랑 김신이라는 동생이 있었어요. 그 두 친구한테는 한국 아마추어 크루들 보면 비트메이커들이 비트테입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는 거 같다면서 우리가 랩만이 힙합 음악이 아니라 비트 뮤직도 힙합 음악이라는 걸 보여주자고 했어요. 실제로 비트테입을 하나씩 내게 했구요. 계속 더 자체적인 걸 만들려고 했어요. 근데 사정상 흐지부지해질 때가 많더라구요 저는 모든 크루에서 <어벤져스(Avengers)>를 꿈꿔요. 지금은 보석집이 어느 정도 <어벤져스>가 된 거 같아요. <어벤져스> 특성상 모든 영웅이 개인 영화가 하나씩 있잖아요. 그 개인 영화로 자기가 엄청 세다는 걸 보여주고, 모두가 뭉쳤을 때 그 기대감이 크잖아요. 그렇게 개개인의 파이를 키우고 뭉쳤을 때 나오는 게 대단하단 말이에요. 저는 그걸 꿈꿔서 일단 각개 전투를 하라고 했는데, 그 친구들은 크루로서의 단합을 더 원했던 거 같아요. 그 부분에서 제가 그 친구들을 잘 설득하지 못했던 거죠. 그중에는 지금 저스트 뮤직(Just Music)에 있는 오션검(Osshun Gum)처럼 자기랑은 안 맞는 거 같다고 나갔던 친구도 있어요. 저야 기분 안 상할 테니까 나가서도 연락하고 지내자고 했었죠.



LE: 김신 씨 같은 경우는 스윙스(Swings) 씨나 팔로알토(Paloalto), 저스디스(Justhis) 씨에게 비트를 준 적이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팔로알토 씨가 엄청 어린데도 잘한다고 말씀하셨던 거 같아요.

저도 그 친구랑 막 연락을 자주 하고 지내지는 않아요. 1년에 한 번 하는데, 사이가 나쁜 건 아니구요. 그 친구가 저 이외에 다른 래퍼들한테 비트를 주는 거 보면, 저나 제 크루랑 하면서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더라구요. 눈에 딱 보이지는 않아도 성장하고 있구나 싶었죠. 폴도 주노플로(Junoflo) 씨랑 작업한 적도 있고, 키드밀리(Kid Milli) 형이랑도 작업했었구요. 이젠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다들 각자 갈 길 가고 있구나 싶어요.



LE: 성격상 그러실 거 같기도 한데, 주변 사람들이 작업물을 냈을 때, 별로면 솔직하게 별로라고 말해주는 편이신가요?

피드백을 구할 때만 그렇게 얘기해요. 저 스스로가 남들한테 피드백을 절대 안 구해요. “이거 어때?”라고 안 물어봐요. 믹스 상태에 대해선 물어볼 수 있는데, 제가 만드는 모든 제 음악에는 가사를 일부러 씹는다든가, 제 의도대로 만들어 놓는 장치들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로 ‘이거 발음 조금 이상한데?’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다 보니까… 그런데 그게 그 사람들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피드백을 해달라고 했으니까 듣고 그냥 이상한 부분을 얘기해 준 거죠. 전 그 이상한 부분을 의도한 건데. 그래서 저는 ‘이것도 의도한 거야, 그것도 의도한 거야’라고 해도 그것도 이상하게 보일까 봐 누군가한테 곡을 들려줄 때 ‘이거 만들었다. 감상해라’라는 식으로 말하고 들려줘요.



LE: 다시 쥬스오버알코올 얘기를 하면요. 음악 스타일이 조금 바뀌면서 여러 가지로 안 맞는 부분이 생겼다고 생각이 드는 때도 많아졌을 것 같은데요.

중간중간 그런 경우가 많았죠. 오르내림이 저희 크루에서 앨범을 제일 먼저 냈었는데, 그때 제가 오해했던 게 있어요. 첫 앨범부터 대박 나기 힘든데, 대박 나는 걸 보면서 축하했지만, 동시에 자극도 받았어요. 그때가 한창 [쾌락설계도] 준비하고, [재건축] 준비하고 있을 때인데, 어느 순간 ‘오르내림이 지금 저렇게 하고 있으면 우리가 따라잡을 생각을 안 하면 뒤처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나머지 친구들은 ‘제원이 잘한다~’ 이러고만 있는 거예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게 나쁜 건 아니거든요. 근데 저는 승부욕이 남들보다 훨씬 강한 타입이고, 그래서 처음에는 ‘너희 왜 이렇게 게을러졌어?’라고 생각했던 거죠. 물론, 지금도 음악을 안 만들려고 하는 친구들이나 열정이 부족해 보이는 친구한테는 뭐라고 하긴 해요. 그런 부분에서 마찰이 좀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저보다 음악을 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그냥 ‘게으른 새끼’라고 단정 짓고 있더라구요. 그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는데도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나 감정을 접어둔 상태에요.



LE: 얘기를 들어보면, 음악을 대하는 태도나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아니면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본인의 감정 기제로 열등감이 크게 작용하는 거 같기도 해요.

근 3년간은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열등감, 시기, 질투, 못 얻는 것에 대한 갈망, 외로움에서 제 모든 원동력이 얻어지죠. 이게 별로 좋진 않아요. (웃음) 언젠가는 극복해야겠죠. 극복하지 않으면 음악은 엄청 열심히 만드는데, 언젠가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별로 행복하진 않을 테니까요. 2~3년 동안 그게 습관처럼 돼 있으니까 친구들이랑 실없는 농담 치다가도 잠깐 얘기를 멈추고 다시 그 모드로 돌아가더라구요. 그러면 잠시 아무 생각을 안 하다가도 다시 ‘아,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뭘 하고 있는 건지 제가 고민할 필요는 없잖아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전 지금 잘하고 있거든요. 근데 스스로 만들어내는 조바심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것 같아요.



LE: 그럼 언젠가는 열등감이 아닌 다른 감정이 원동력이 되는 시기가 온다면,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 나올 수도 있을까요?

그렇죠. 긍정을 전파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자아 성찰을 통한 긍정? 저는 개인적으로 아직까지 그게 되게 X까는 소리로 들리거든요. (전원 웃음) 왜냐하면, 대부분 긍정을 논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긍정적으로 살아야 일들이 잘 풀린다고 하는데, 일이 이미 잘 풀린 사람들이 그 얘기를 하잖아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지금 일이 잘 풀려서 저런 얘기를 하는 건지, 진짜 긍정적인 마음을 품어서 저렇게 잘 된 건지 의심이 가더라구요. 저는 기대를 하고 실망하는 것보다 미리 실망하고 결과가 그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나았을 때 얻어지는 안도감이 훨씬 편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는 별로 와 닿지 않아요. 어느 순간 깨닫게 되면, 저도 그런 얘기를 하겠죠. 근데 지금은 이해 못 하겠어요.



LE: 앞서 사운드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골드링크가 잠깐 나왔는데, 스타일상으로 쿤디판다 씨가 골드링크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좀 있더라구요. 실제로 골드링크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제가 한창 퓨처 바운스를 할 때는 (영향이) 엄청 심했죠. 사실 그때는 의도적으로 카피를 했어요. 골드링크의 음가 처리가 남달라서 너무 멋있었고, ‘한국에 이런 거 갖고 오는 사람이 많이 없었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서 흡수하려고 했어요. 돌이켜 평가해보면, 그 결과들은 다 모방에 불과했던 작품들이죠. 제가 가사를 골드링크처럼 남다르게 쓴 것도 아니었고, 한영혼용도 아무 생각 없이 남발하던 때였어요. 그래서 그 얘기가 나오는 건 사실 전혀 문제없고 기분도 안 상하는데, 지금 제 음악에 골드링크를 갖다 붙이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지금은 닮은 점이 단 한 군데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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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랩 스타일을 보면 비트나 프로덕션은 트렌디한데, 랩은 생각보다 클래시컬한 스타일 아닌가 싶기도 해요.

어느 순간 들었던 생각인데, 보통 사람들이 랩 테크닉이라고 표현하는 게 2, 3년 정도 지나면 추세가 바뀌더라구요. 스킬적으로 박자를 쪼갠다든지 그런 가시적으로 보이는 게 항상 바뀌어 왔잖아요. 근데 몇 십 년을 넘겨서도 오래 살아남는 건 화려한 유행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랩이 랩답게 느껴지는 그루브 감과 레이드백이더라구요. 그걸 연구하기 시작했죠.



LE: 사람들이 스킬풀하다고 느끼는 게, 사실 랩 안에서 리듬 구조나 플로우 디자인을 변하게 한다거나 그런 부분인데, 쿤디판다 씨의 랩은 말씀하신 대로 어느 정도 정해진 리듬감을 꾸준하게 살리려는 듯한 느낌이 있는 거 같아요.

저도 촌스러워지지 않는 한에서 라임을 변칙적으로 바꾸거나 랩 디자인을 갑자기 바꿀 때가 있어요. 근데 막상 다 녹음하고 들었을 때, ‘이건 한 2년 뒤에 촌스럽게 느껴지겠다’ 싶은 것들이 있어요. 그런 건 다시 녹음하는 편인 것 같아요.



LE: 비트 스타일로 봤을 땐, 요즘 랩할 때 가장 편안하게 느끼거나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 클래시컬한 붐뱁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게, 요즘은 아예 클래시컬한 붐뱁은 아니구요. 사실 비앙(Viann) 형의 비트가 제일 편한 것 같아요. 비앙 형이랑 저랑 음악적으로 좋아하는 취향이 너무 비슷해요. 형이 베이스를 연주하는 것만 봐도 그렇고, 드럼 라인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봐도 그렇고, 둘 다 제이딜라(J Dilla)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형이 예전에 저한테 했던 말이 있는데, (어떤 곡의) 드럼이 약간 엇박인 거예요. 그래서 형한테 이거 퀀타이즈(Quantize, 시퀀서 내부에서 미디 신호를 가장 가까운 박자에 맞추는 기능) 안 했냐고 했더니 비앙 형이 “야, 드럼은 손맛이지.”라고 대답했어요. (전원 웃음) 장인정신 같아서 멋있더라구요. 근데 제이딜라도 자기가 드럼 연주를 다 하는 거로 알고 있거든요. 제가 프리스타일을 할 때 제이딜라의 비트를 틀어놓고 자주 하는데, 박자가 조금 엇나갈 때가 있어요. 갑자기 빨라질 때도 있는데, 그게 매력이죠. 저도 랩을 할 때 완벽한 메트로놈에 딱 맞는 박자로 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스윙감을 주거든요. 그래서 비앙 형 비트랑 제일 잘 맞아요. 제가 어떤 레퍼런스를 주면 비앙 형은 자기 스타일대로 그걸 해석하는데, 그게 또 제 취향이랑 맞아요. 그렇다고 해서 비앙 형의 스타일이 클래식한 붐뱁이냐고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클래식한 붐뱁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DJ 프리미어(DJ Premier), 피트 락(Pete Rock) 그런 사람들이잖아요.



LE: 요즘은 세대가 바뀌다 보니까, 오히려 트랩 뮤직에 랩을 얹는 걸 편하게 생각하는 래퍼들이 많이 는 것 같아요. 혹시 쿤디판다 씨는 트랩 비트를 꺼리는 편인가요?

전혀 아니에요. 어제도 사운드클라우드 돌아다니다가 들은 트랩 비트가 좋아서 이런 거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요즘 들어 작업하자고 오는 메일들을 보면 저한테 트랩을 절대 안 줘요. 왜냐하면, 저한테 기대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근데 저 트랩도 많이 들어서 진짜 잘할 자신 있거든요. 그리고 랩을 잘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트랩도 잘하겠죠. 다만, 만약에 트랩으로 시작한 친구들이 정석적인 걸 하려고 하면 이해도가 부족하니까 시행착오가 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 양쪽 다 많이 들어서 (트랩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해요.



LE: 쿤디판다 씨가 가지고 있는 랩 톤에 대한 호불호가 있는 편인 거 같아요. 완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약간 답답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본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제 목소리는 살짝 더 다듬어지면 굉장히 맛깔 나는 톤이 될 거예요. 믹스테입이나 프로젝트 단위로 냈던 작업물들을 들어보면 계속 톤이 바뀌어요. 3, 4개월마다 하나씩 냈는데, 작업물을 낼 때마다 톤이 바뀌었어요. 저도 제 톤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거죠. 그렇다가 [부산물]을 낼 때쯤 되니까 부자연스러움이 거의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이나 <마이크 스웨거> 반응을 보니까 좋다는 평이 많았지만, 별로라면서 톤이 왜 똑같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안 똑같아요. 이건 제가 음가적으로도 보여줄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톤의 취향이라고 하는 게 어쩌면 제 랩에 대한 꼬투리를 잡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너무 꼰대같은 거예요. (전원 웃음)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린 꼰대… 꼰대인데 나이까지 어리면 말 다 했잖아요. 그러기 싫어서 아직 발표 안 된 곡 중엔 아예 힘을 뺀 톤으로 녹음한 곡들도 많아요. ‘이렇게 하면 어쩔 거야?’라고 말하듯이요.



LE: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고 볼 수도 있을까요?

정확하게 제 머릿속에서 정의되는 표현으로는, 제가 말을 하듯이 랩이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쨌든 사람들이 저랑 말을 할 때 제 목소리보고 뭐라고는 안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말하듯이 랩을 하면 사람들이 들었을 때도 편안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LE: 다른 방면으로 비판적인 시선도 있어요. 톤도 그렇지만, 플로우가 일정하다, 단조롭다 하는 의견도 보이거든요.

그 의견은 절대 이해 안 가요. 왜냐하면, 제 플로우는 절대로 일정하지 않아요. 요즘 트렌디하고 플로우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제가 들어도 ‘와, 어떻게 이렇게 하지?’하고 감탄하는… 저스디스 씨나 키드밀리 형 같은 사람이 있긴 하죠. 그런 사람들 랩을 듣고 제 랩을 들으면 단조로울 수밖에 없어요. (웃음) 솔직히 그건 저도 반박할 수가 없죠. 다만, 저는 제 랩을 창작자의 관점으로 보니까 제가 라임을 어떤 식으로 바꾸고 어떻게 이어가는지를 알거든요. 전 제 랩이 일정하지 않다는 데에 근거를 들 수가 있어요. 하지만 랩을 눈으로 듣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제가 더 노력은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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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기준이 확실하게 있으신 것 같아요.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요한 래퍼가 아닌가 싶은데, 메시지를 완벽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사운드나 스킬적인 면을 희생하는 편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어느 정도 그렇긴 해요. [재건축]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정말 많이 양보했어요. 왜냐하면, [재건축] 때까지만 해도 저는 무조건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해야 했거든요. 근데 또 막상 [재건축]을 완성하고 발매 날짜가 잡혔는데, 믹싱, 마스터링도 해야 하니 두 달 정도 수정을 못 하는 상태였어요. 그 두 달 동안 완성된 [재건축]의 녹음물을 들으면서 아쉬움을 삼키고만 있어야 했어요. 어쨌든 발매 날짜를 잡은 거고, 그해 내기로 했는데 심지어 엄청 밀려서 11월 25일까지 갔어요. 사실 일주일만 늦어져도 저는 한국대중음악상을 못 받는 거잖아요. (웃음) 그렇게 듣는 와중에 ‘이런 부분은 더 잘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었죠. 스킬적으로 어느 부분이 아쉬운지 제가 안단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그때 이후로 제 피처링 벌스들이 [재건축]에서 한 랩들보다 더 좋게 들렸어요. 아마 사람들이 들었을 때도 더 좋을 거예요. 그러면서 점점 양보할 필요가 없이 여유가 생기고 있는 것 같아요.



LE: 다만, [재건축] 때는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확실하게 있었기 때문에 양보한 부분이 있었던 거군요.

어쩌면 그때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해서 스킬을 쓰지 말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그런 강박을 놔두고, ‘어차피 내가 쓰는 가사들 다 의미 있고 내가 쓰고 싶은 거 다 쓰는데, 하고 싶은 거 다 하자’라는 느낌으로 가고 있지 않나 싶어요.



LE: [재건축]에 대한 피드백 중에 스킬적인 부분에서 피드백이 많이 있었나요?

부정적인 의견의 80%는 제 머릿속에서 나온 거예요. 제가 들었을 때 심심한 거죠. 나머지 20%는 실제로 인터넷 반응들이 있죠. ‘얘는 왜 랩을 이렇게 맨날 쏘기만 하고 재미가 없냐, 별로다, 인위적이다’… 근데 그 당시 작업물로는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정하는 부분도 있어요.



LE: “NOT4SALE”을 들어보면, 헤이터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요. 평소에 악플이 많이 달리는 편인가 싶고, 또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늘 보시는 편인가 싶어요.

인터넷 반응을 굉장히 많이 신경 쓰는 편이에요. 좋은 댓글들도 자주 보는데, 나쁜 댓글들은 사실 보고서는 궁금해하긴 해요. 왜 이렇게 생각할까. 만약 무분별한 비난이면, 누가 봐도 제가 보고 기분 나쁘라고 하는, 피드백을 가장한 악플이면 무시해요. 근데 제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짓을 한 사람도 아닌데, 어떤 사람이 저를 향해 비난을 가한다면 그 사람도 분명 어떤 근거가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걸 보고 고치려고 하는 거죠. 반영되기 때문에 항상 반응들을 봐요. <쇼미더머니> 시즌 5 나오고 나서 악플이 많이 달렸어요. 뭘 하든 무관심 아니면 악플이었어요. 어쨌든 저는 <쇼미더머니>에서 불구덩이 떨어진 사람이니까. MC 메타를 디스하고 패기롭게 나왔는데 떨어진 사람이니까. 저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높았던 것 같아요. “NOT4SALE”의 가사에서처럼 아버지께서 아들이 잘하고 있나 검색을 해보신 적이 있었는데요. 힙합엘이에서 저를 무조건적으로 비방하고 다닌 사람이 있었어요. 태도도 구린데 랩도 구리다고. 얘는 X신이다. 그런 얘기를 항상 하고 다녔거든요. 그 당시에 아디다스(Adidas) 광고에서 나레이션을 했을 때 그걸 누가 힙합엘이에 퍼갔는데, 저희 부모님이 그냥 검색 유입으로 그 페이지를 들어가시게 된 거죠. 제가 밖에 있었을 때 아빠가 그걸 보고 저한테 그 링크를 보내주면서, “오, 아들 이런 것도 했네”라고 하셨는데, 들어가 봤더니 페이지 밑에 떡하니 악플이 있던 거예요. 아빠는 내색을 안 하셨지만, 분명히 봤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는 불효하는 느낌이 좀 들었죠. 그래서 “NOT4SALE”의 가사를 쓰게 된 건데, 그렇게 제가 특별히 감정이 상하지 않는 이상 악플들은 웬만하면 다 참고해요.



LE: 반응을 살펴볼 땐 혹시 저희 힙합엘이 커뮤니티를 가장 많이 보시나요? 힙합 커뮤니티가 저희 사이트 말고 다른 규모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잖아요.

디시인사이드 힙합 갤러리(이하 힙갤)도 보긴 하는데, 힙갤과 힙합엘이 이용자들의 마음가짐이 다른 것 같아요. 일단 힙갤은 단체 카톡방 느낌이에요. (전원 웃음)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쓰는 거죠. 힙합이 아닐 수도 있어요. 어제 뭘 먹었는데 어떻다든가… 아니면 요새 <쇼미더머니 777>이 방송 중이니까 서로 의견 물어보고 헐뜯기도 하고. 그런데 힙합엘이를 보면 기본적으로 다들 남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걸 전제로 하잖아요. 존댓말을 하구요. 어떻게 보면 스터디 그룹 같은 느낌이에요. 제가 봤을 때 얘기하는 내용이 서로 많이 다르진 않은데, 분위기가 달라서 두 커뮤니티를 자주 보는 것 같아요.


♬ 비앙 X 쿤디판다 (Feat. Sumin) - Ms. 808


LE: 커뮤니티 얘기로 많이 건너간 것 같은데, 작사 방식에 관한 얘기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Ms.808”이 [재건축]의 선공개 곡으로 먼저 발표됐었잖아요. 곡을 들어보면, 스토리텔링도 스토리텔링이지만 마치 영화를 감상하듯이 가사 속에 담긴 묘사들이 훌륭해요. 주인공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구요. 어떤 본인만의 독특한 작사 방식이 있는 걸까요?

짚어주셔서 너무 감사한데, 저는 가사를 쓸 때, 예를 들어 지금 여기 남자 세 명이 앉아 있고, 커피가 있고 하면 영화에서는 카메라 구도가 커피에서 시작해서 점점 이동하잖아요. 상황 파악이 카메라를 통해 된단 말이에요. 저도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걸 좋아해요. “Ms.808” 가사의 첫 부분을 보면 소주로 시작해서, 술을 엄청 많이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그때 피어나오는 연기가 허무하고… 그렇게 그 사람의 공허함을 표현한 다음, 클럽에 가서 그 여자를 본 걸 얘기하죠. 영화라고 생각하고 구도를 제가 일부러 짜고 만드는 편인 것 같아요. “Ms.808”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데, 실화를 쓸 땐 항상 이런 작법을 사용해요.



LE: “Ms.808”은 듣고 있으면 정말 새벽 5시 홍대에서 첫차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웃음) 저희가 알기에는 쿤디판다라는 랩 네임도 그렇고, 예전 믹스테입들을 들어보면 가상의 세계를 설정하고 아예 다른 이야기를 하는 느낌도 있었던 것 같아요. 뭐랄까,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있는데요.

실제로 옛날에는 그랬고, 지금도 그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단지 지금은 제가 음악을 하면서 책임감을 느끼고 바로잡아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먼저 끝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만화 같은 데서 따와서 가상의 인물을 캐릭터로 갖고 오는 크루들이 몇몇 있었잖아요. 살롱 01(Salon 01)도 그랬고, 스타즈 오브 맨(STAZ OF MAN)도 그랬죠. 그 크루들의 컨셉을 엄청 좋아했거든요. 랩 스킬을 보여주는데, 그 스킬이 진짜 썬더볼트 같은 스킬인 것 같고. (웃음) 플레이어들 각자의 이야기를 보면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만화 같기도 하구요. 그런 것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고, 쿤디판다라는 이름도 그렇게 지었는데, 마냥 그런 거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사라지더라구요. 제가 인간으로서 스물한, 두 살에 '복현'을 '쿤디판다'로서 담아내는 작업을 하다 보니 그걸 우선순위에서 위에 둘 수가 없더라고요. 일단 자전적인 얘기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해요.



LE: 지금 준비하고 계신 첫 정규 앨범의 제목이 [가로사옥]이잖아요. '건축 유니버스'의 종착점으로서 그러한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마무리 짓는 작품이 될까요?

정확히 얘기하자면 결론이 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원래 결론을 지으려고 계획한 건 맞는데, 사실 [쾌락설계도]를 만들면서 [가로사옥]의 시놉시스를 다 짜놓은 상태였는데, 지금 2년이 지났잖아요. 그동안 생각이 몇 가지 바뀌었는데, 원래는 [쾌락설계도]를 통해 제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멋짐, 쾌락, 이런 것들을 좇기 위해 설계도를 만들고, 재건축을 하고, 시공이 끝났을 때, [가로사옥]으로 제가 뭘 원했는지 찾게 되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근데 스물두 살이 거의 끝날 때쯤의 저를 보니까 끝이 진짜 끝이 아니더라구요.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된 건 너무 고마운 일인 것 같아요. (다만, 작품이고 시리즈니까) 마지막에 결론이 있긴 해요.



LE: [가로사옥]의 시놉시스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문서로 정리해둔 설계도 같은 게 있는 건가요? 혹시 인스타그램 프로필 하이라이트에 있는 글일까요?

텍스트 파일이 있어요. 시나리오처럼 텍스트 파일로 써놓은 게 있어요. 인스타그램 하이라이트에 올려놓은 거 맞아요. 사실 그것만 보면 뭔 소린지 모르는데 아무튼 찍어놨어요. 제가 다시 글로 써서 엽서 형태로 프린팅해서 피지컬 앨범에 넣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가로사옥]이 어쨌든 완공된 집이잖아요. 집으로 보내는 초대장 같은 느낌의 테마를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일단 만들어 봐야죠.



LE: 그럼 조금 전에 말씀하신 커리어 초반에 선보였던 가상 세계와 관련된 음악은 이번 시리즈가 끝나고 나서 새롭게 시작될 가능성도 있는 건가요?

일단 2집까지는 아니에요. 2집도 제가 인간으로서, 래퍼로서, 가사를 책임감 있게 쓰는 사람으로서 무조건 해야 하는 얘기를 담고 있어요. 지금 얘기하면 설레발이니까 구체적인 얘기는 못 드리지만, (웃음) 제가 인간으로서 매듭을 지어야 후련한 것들이 있잖아요. 후회가 될 수 있는 지난날의 것들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마음 편하게 다 해결하고 가고 싶어요.



LE: 한창 얘기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새삼 쿤디판다 씨가 아직 정규 1집을 내지 않았다는 게 놀랍게 느껴지네요. 개인 정규 앨범에 갈망이 어느 정도 있으실 것 같아요.

갈망이 있는데, 너무 있는 나머지 사람이 완벽주의적으로 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작업물이 자주 안 나오는데 랩이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자기 작업물에 대한 완벽주의가 되게 강하거든요. 근데 전 스스로를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절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에요. 재능이 있는 사람도 아니구요. 그래서 저는 다작을 통해 천천히 폼을 올리면서, 이 폼을 정상급으로 올리자는 마음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에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가로사옥]을 몇 년째 생각하다 보니 저한테도 어느 정도의 완벽주의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진짜 빨리 좀 끝내야죠. 과감하게 나가야 할 것 같아요.


♬ 비앙 X 쿤디판다 - 양반증후군 (Hypocrites) + RANDOMCALL


LE: 이번에도 방식에 관련된 질문인데요. 종종 곡의 테마가 의미심장하다고 할까요? 예컨대, "방목", "양반증후군" 같은 곡의 제목을 보면, 사실 일반적인 키워드는 아닌 거 같아요. 그래서 곡의 테마나 주제를 어떻게 정하시는 지가 궁금하더라구요. 혹 제목을 먼저 정한 후 내용을 채우는 편이신가요?

기본적으로 테마는 머릿속에 무조건 있어요. 어떤 얘기든 써야겠다는 건 있고, 가사를 쓸 때 제목을 엄청 독특하게 지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만약에 제가 "방목"이라는 곡의 제목을 ‘온실 속 화초’라고 지었다면 예상이 가지 않았을까요? 재미도 없고, 들어야 할 이유도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간단명료하면서도 무슨 얘기일까 궁금하게 하는 제목을 써요. '방생'이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온실 속 화초를 내보낸다고 해서 나무 목(木) 자를 갖다 붙인 건데, 원래는 그 단어가 있었는 지도 몰랐어요. '양반증후군'도 아예 없는 말이구요. 양반과 증후군을 합쳤을 뿐이에요. 근데 이런 것들을 마냥 합쳐놨을 때, 재미있는 어감이 생긴단 말이에요. 뭘까 하면서 듣게 되는? [가로사옥]도 그래요. 어떻게 가로로 생긴 사옥이 있겠어요. 근데 그냥 말을 만드니까 재미있는 거예요. 그 외에 합성된 단어가 아니라도 봤을 때, '이게 무슨 얘기일까?' 생각하게 하는 제목들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오르내림 형도 그걸 되게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비누", “선인장", “향수병”. 이러면 무슨 얘기인지 모르잖아요. 들어야만 알 수 있는데, 그거대로 엄청난 오브제가 되어서 자기 얘기로 연결되니까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죠. 그런 게 딱 제 취향인 것 같아요.



LE: 확실히 쿤디판다 씨의 음악을 들으면 모든 것이 촘촘하게 짜여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즉흥적으로 풀어놓고자 하는 컨텐츠를 다 풀어놓고 거기에 라벨을 붙인다기보다는 라벨을 미리 붙이고 작업을 시작하는 스타일이 아닐까 싶었거든요.

이제는 그런 과정이 머릿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최근에 사운드클라우드에 “못”이라는 노래를 공개했어요. ‘못’이 이중적인 의미가 있잖아요. ‘못한다’ 할 때의 못이 될 수도 있고, 가슴에 박히는 못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농]의 제목도 농을 던지다 할 때의 '농'일 수도 있지만, 혈중알코올농도를 의미하는 '농'이 될 수도 있는 건데, 둘 다 술자리에 맞는 키워드였죠. “못”도 지금 저의 못된 모습을 한 번에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게 다 주제가 머릿속에서 생겨났는데, 동시에 단어가 떠오른 경우에요. 제목을 짓고 가사를 썼다고 할 수도 있지만, 주제를 먼저 생각하고 제목을 지은 거죠.



LE: 일상에서도 테마를 많이 가져오시는 편이신가요? 예를 들면, 버스 번호가 제목인 곡도 있었고, “이사”라는 곡도 실제로 이사했던 경험에서 나온 곡이잖아요. 일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건 곡으로 만들면 좋겠다’ 생각하고 메모를 하실 것 같기도 하구요.

메모까지 하진 않지만, 제가 쓸데없는 시사 상식 같은 걸 꽤 많이 알고 있어요. 운이 좋은 건진 모르겠는데, 무심코 TV 같은 걸 봐도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같은 채널을 보면서 어떤 동물, 예를 들어 해파리는 사실 수영을 하는 게 아니라 기류에 떠밀려 다닌다는 정보를 얻어요. 그 모습을 보고 마치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바로 드는 거예요. 그런 느낌으로 제 개인적인 정신 상태를 투영할 수 있는 일상적인 오브제가 있어요.



LE: 연상하는 능력이 대단하신 것 같은데, 프리스타일을 잘하신다는 것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없다고 할 순 없는데, 정확히는 문학을 배울 때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국영수를 배울 때 문학 같은 걸 보면 무슨 씬에서 어떤 물건이 의도하는 것을 찾는 문제라든가 그런 걸 보면서 상징성을 가지는 게 되게 재미있는 거라는 걸 느꼈죠. 그런 순발력이 프리스타일에 도움이 된 건 맞는 것 같아요.



LE: 테마나 메시지만큼이나 전달력이 또 중요하잖아요. 특별히 딜리버리에 신경을 쓰시는 편인가요? 워낙 발음이 원래부터 좋은 편이라고 말씀해주시긴 했는데요.

중요시하죠. 다이나믹듀오의 “Trust Me”에서 개코 씨 가사에 그런 구절이 있었던 거 같아요. 가사집 안 보고 알아들을 때까지 손가락 빨아라. 그 가사가 되게 충격이었어요. 사실 가사를 펴 놓고 들어도 돼요. 그게 뭐가 문제겠어요? 그거대로의 감상법이잖아요. 다만, 가사를 보고 듣는 것보다 귀로 들었을 때 확 오는 몰입감은 또 다른 감흥이 있단 말이에요. 그걸 더 추구하긴 하는 것 같아요.



LE: 발음도 발음이고, 랩도 랩이고, 음악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지금까지 냈던 트랙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 있을까요? 워낙 음악 안에서 솔직하신 편이니까,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드러낸 트랙이 있으신가 궁금하기도 하구요.

아직 안 나왔어요. 지금까지 나온 트랙들로만 얘기하자면, 프로젝트마다 하나씩 있죠. [쾌락설계도]의 “지망생”, [재건축]의 “양반증후군”, [부산물]에서도 사실은 “마이너리그”를 좋아하구요. [농]에서도 “머그샷” 같은 게 제가 솔직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솔직했던 트랙인 것 같아요. 근데 아직 핵심을 건드린 트랙은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아마 [가로사옥]엔 엄청나게 많을 거예요. 왜냐하면, 낯부끄러울 정도로 제가 솔직한 얘기를 할 거예요.



LE: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완벽하게 모든 걸 끄집어낸 음악이 없었는데, 이번 작품이 그럴 것 같다는 말씀이신가요?

어쩔 수가 없는 게, 지금까지 만들었던 모든 트랙은 제 개인의 깊은 얘기를 꺼낸 게 아니라 어떠한 주제에 맞춰서 쓰다 보니 타협점이 생긴 케이스에요. 근데 [가로사옥]에선 제가 타협을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제가 쓰는 제 얘기니까. 그래서 제일 깊은 데 있는 걸 끄집어냈어요.



LE: 이미 충분히 솔직하다고 생각을 하긴 했는데 끄집어내지 않은 것들도 있었군요.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태균이 형의 [녹색이념]도 되게 자기 얘기잖아요. 보는 사람이 하여금 불편한 얘기들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있어요. 남들이 듣기 불편해도 내가 이걸 얘기 안 하면 내가 불편하니까 내가 얘기해야 한다. 얘기를 안 하면 이제는 떳떳할 수 없기 때문에… (전원 웃음) 저는 항상 그런 걸 듣고 자랐던 것 같아요. [녹색이념]이 될 수도 있고, 심바 자와디 형의 [Names]가 될 수도 있고, 깊게 들어가면 아빠나 엄마가 어디서든 떳떳하고 정직하라고 교육하셨던 방침 같은 게 지금 와서 인생의 모토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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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래서 그런지, “마이너리그” 같은 곡에서는 굉장히 자조적인 태도가 비치는 것 같기도 했어요. 부정적인 면모를 꺼내는 데 별로 스스럼이 없다는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사실 리얼함의 기준이 그게 아니었나 싶어요. 래퍼들이 흔히 유행처럼 하는 애기 있잖아요. ‘얘는 진짜 리얼하다’ 근데 리얼이라는 게 진짜란 얘기잖아요. 그 리얼함을 랩을 잘하고 못하고로 따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자기 얘기를 어떻게 꺼내느냐가 리얼함이잖아요. 근데 제가 듣고 자란 모든 랩 가사에서는 MC는 리얼해야 한다는 게 기본이었거든요. 제가 그 기준에 부합한 사람일 뿐인데, 그걸 보고 칭찬할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 후에 얼마나 더 재미있는 얘기를 푸느냐의 문제로 더 집중됐으면 좋겠어요. 물론, 거짓말 치는 사람이 많아서 제가 더 돋보이는 것일 순 있겠지만요.



LE: 괴리감 같은 게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 힙합이나 랩 같은 경우 자기 과시를 하는 면이 있는데, 쿤디판다 씨는 스스로를 X밥이라든지, 되게 낮게 표현하시잖아요. 어떻게 보면 힙합과 가장 잘 맞으면서도 가장 안 맞는 태도일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사실 괴리감은, 제가 저답지 않은 걸 했을 때 더 커요. 그래서 괴리감이 덜한 것을 택한 거고, 그래야 마음이 더 편하죠. 저도 저 스스로를 밑바닥, X밥, 아마추어에서 갓 올라온 놈으로 표현하는 게 기분이 좋지는 않은데, 정말 본질적으로 들여다봤을 때 기분이 안 좋은 이유는 그게 사실이어서에요. 제가 그 표현을 써서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때문이 아니에요. 저는 저를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저는 조회 수도 잘 안 나오고, 팔로워 많아도 제 공연 보러 오는 사람은 열 명도 안 돼요. 저는 여자한테 다가가는 것도 인간적으로 잘 못 해요. 돈은 많은데, 그게 저희 아빠 돈이지 제 돈은 아니잖아요. 그럼 제가 가진 게 뭐냐고 하면 저는 없거든요. 그래서 없다고 쓰는 거예요. (웃음) 별 이유가 없어요. ‘그래서 난 이래’ 하고 쓰는 거예요. 있는 척하다가 들통난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들통났을 때의 모습이 되게 추하더라구요. 그럴 바엔 그냥 먼저 없다고 하는 게 낫더라구요.



LE: 가사를 보면, 인스타그램을 비롯해서 SNS 속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거 같아요. 그 와중에 SNS의 풍경을 보면서 괴리감을 느끼시나 싶기도 했구요.

마냥 편안하지는 않아요. 일단 첫 번째로 제가 SNS에서 그렇게 잘 나가는 것도 아니구요. 두 번째로는 SNS가 사람들한테 끼치는 심리적인 현상이 남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극대화시키는 거인 거 같아요. 멋진 남성, 예쁘장한 여성, 엄청 멋있는 일을 하는 사람, 근사한 풍경, 현실 속에서 찾지 못하는 가상적인 요소를 잘 이끌어 낸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저는 지금까지 SNS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는 거죠. SNS의 기본적인 용도가 저와 SNS로 연결된 사람들한테 자기가 지금 이런 상태라는 걸 보여주는 거잖아요. 동정표나 부러움 구걸하는 걸 수도 있을 텐데, 뭔가를 항상 남들한테 요하는 거죠. 그런 데서 오는 현상들이 흥미롭기도 하고, 스스로를 통찰하지 못했을 때 했던 얘기들이 엄청 어리석고 재미있단 말이에요. 약간 전래동화 보듯 하는 거죠. 그런 걸 (가사에) 담고 싶었고, 동시에 21세기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제 입장이 신기한 거 같아요. 그 세계에서는 완벽한 결론이 안 나거든요.



LE: ‘B급 연예인 중에 B급 연예인’이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보통 연예인으로 불릴 법한 아티스트가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칭하는 경우는 많아도 그 반대는 많지 않은 거 같은데요. 그런 라인도 SNS 속 세상과 연동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근 몇 년 동안은 우리가 보면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원래는 TV나 영화관에 국한되어 있다가 이제는 인터넷으로 넘어왔잖아요. 유튜브로도 방송할 수 있고, 아프리카(Afreeca)에서 트위치(Twitch)로 넘어왔구요. 너무나 자유분방하게 자체 콘텐츠를 만드는 세대가 되었는데, 그 세대에서 아티스트도 아티스트의 기본적인 자질에서 딸려 나오는 아이코닉함이 그 팬들한테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그 부분에서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요. 연예인 같은 직업을 가진 분들이 어떻게 보면 사람들한테 착하고 상냥하게 보여야 하고,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하고, 래퍼들에게도 그래야 하는 시대가 온 거죠. 그래서 엄청 잘 나가는 래퍼들이 연예인처럼 보이는데, 자기는 아티스트라고 얘기하는 게 그분들도 헷갈리는 거 아닐까요? 자기가 아티스트인지, 너무 연예인적인 성격도 띠어서 연예인이라고 불리는 것에 혼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니면 그냥 멋있는 척하는 걸 테구요. 계속 말씀드렸지만, 양심의 문제에요. 제가 ‘에이, 구라 치는 거 같은데’라고 생각해도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죠.



LE: 본인을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도 있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노출되면서 인지도가 어느 정도 상승했다는 걸 체감할 거 같기도 한데요.

상승하긴 했죠. 사실이기 때문에 부정할 이유는 없으나, 제 가치가 올라갔냐고 하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근거가 있어요. 아까 말씀드렸던 티켓 파워도 그렇고, 무엇보다 제가 저를 좋아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럴 수 없는 거 같아요.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너무 많이 찾아서… 그래서 그런 자조적인 어휘 선택이 나오는 건데,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짚고 넘어가야죠. 제가 팔로워가 만 명이 넘었다고 하면 그건 근거가 있는 팩트죠. 동시에 ‘10K’라고 뜨지만, 공연 예매율이 저조해서 취소됐다는 것도 팩트죠. 그런 데서 오는 어휘 선택, 표현인 거죠.



LE: 예매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간에 실체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게 좀 있다는 거네요.

그렇죠. 아이콘 TV(Icon TV)에 나오고, 캉골(Kangol) 인터뷰를 하고, 사람들이 알만한 것들을 한다고 해서 제 가치가 높아지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외부적인 가치는 올라갈 수 있죠. 근데 그건 섭외할 때 금액에서 국한되는 이야기죠. 사람이 어떤 영향력을 갖고 다른 사람,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서요. 제 초점을 항상 거기에 맞춰져 있죠.



LE: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 또 어른이 되었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한 뉘앙스의 내용도 가사에 있는데요. 사회에 녹아드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이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지금 말씀하신 사회에 녹아들면서 사회적인 지위가 점점 높아지는 것도 있구요. 저는 애처럼 생각하는 것과 어른처럼 생각하는 것 사이에 차이점은 안전망이 있느냐 없느냐, 책임감이 있느냐 없느냐인 거 같아요. 저는 어른인데 책임감이 없는 사람도 봤고, 애일 뿐인데 스스로에 대한 안전망 없이 그냥 뛰어드는 친구들도 봤어요. 정신적인 나이와 합법적이고 물리적으로 성인이 됐다고 하는 나이의 범주도 항상 양비론적으로 다루려고 해요.



LE: 아이를 ‘순수’라는 키워드로 보았을 때, 세상에 녹아들면서 점점 실리를 따진다든가, 그 사이에서의 내적 갈등을 느끼면서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순수를 잃어가나?’ 같은 생각을 담아내려 하셨나 싶더라구요.

그것도 방금 말한 것과 차이점이 없는 게, 실리를 따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안전함이 없기 때문에 자기 것을 챙겨야 하는 거 같아요. 만약 모 사상처럼 모두가 평등해야 하고, 똑같이 나누어 가지는 게 완벽하게 되는 유토피아가 가능하다면, 남들 것을 뺏어가고 자기 것을 악착같이 찾으려고 할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방목”에서도 욕심이라고 하는 것의 근본은 결핍이라고 얘기했었는데, 결핍되는 순간 저희가 스스로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LE: 쿤디판다 씨는 예전보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이 드나요? 실리를 따지는 부분에서든,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든요.

키덜트인데, 머리를 굴리는 건 엄청 빨라졌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예전에는 사회 부적응자마냥 지 할 이야기만 하고 쏙 빠지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죠. 능수능란해지는 건 맞는데, 동시에 순수하게 지키고 싶은 게 있어요. 그게 음악에서는 무조건 지키고 싶어요. 음악에서 돈을 따지게 되는 순간에 래퍼들이 맛이 가는 걸 많이 봤기 때문에… (웃음)



LE: 정신적으로 험난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음악을 하고자 하는 마인드나 힙합, 랩에 대한 의지나 열정은 그대로 가져가려 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저도 다른 사람에게 피처링할 때는 페이를 받고 하잖아요. 근데 그럴 때는 돈을 무조건 중요시해요. 왜냐하면, 그 피처링 벌스에 아무리 애착이 가도 그게 제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제가 한 작업이긴 한데, 제 자식처럼 생각하진 않는다는 거죠. 결국은 그 사람이 제 목소리를 빌려 쓰는 거니까요. 그랬을 때 저는 돈을 따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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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수민 씨가 인터뷰하실 때, 본인이 피처링할 때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거나 아니면 정말 돈이 많이 되거나 둘 사이에서 밸런스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이렇게 표현하는데, 제가 외주를 맡을 때 페이는 정신적인 노동과 정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걸 하면서 너무 어거지로 한다 하면 그만큼 돈을 더 받는 거구요. 곡을 들었는데, 이건 무조건 좋은 곡이 나오겠다, 이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다고 하면 훗날을 위해서라도 페이를 절대 안 받아요. 그런 사람한테 페이를 받아서 뭐해요. 저랑 생각이 너무 잘 맞는 사람일 텐데.



LE: 최근에 피처링 제의가 많이 들어오는 편인가요? 그 와중에도 가려서 하는 편이신가요?

많이 들어오는데, 아실 만한 사람은 거의 없어요. 도저히 못 하겠으면 안 하죠. (웃음) 스타일이 안 맞거나 가사 주제적인 부분에서 제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주제를 부탁한다든지… 도덕적인 거일 수도 있고, 성적인 거일 수도 있구요. 그럴 때는 이건 도저히 제가 맞춰서도 못 쓸 거 같다고 하죠.



LE: 성적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수민 씨의 “치킨”에 피처링하셨을 때, 수민 씨는 그 정도로 높은 수위를 생각하지는 않으셨던 거 같더라구요. 쿤디판다 씨가 가사를 그렇게 써줘서 그대로 살리려고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서로 오해했던 거 같은데요. 사실 누가 진짜 치킨에 관해서 쓴다고 생각하겠어요. 제가 수민 누나 음감회에서 이야기했던 건데, 그 누나가 가사를 보여줄 때 ‘넌 너무 매끄러워… 그것이 바로 너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보상…’ 그렇게 쓰여 있는데 누가 그걸 성적으로 생각 안 해요. 물론, 성적 호기심이 유발한 건 제 몫이긴 하죠. 맥락상으로 누가 봤어도 이건 성적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LE: ‘음부’ 같은 단어를 대놓고 쓸 줄은 몰랐다 이런 거 같긴 했어요.

그건 좀 다른 이야기긴 한데, 그때 당시에 저음부라는 음향적인 요소를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그걸 보고서 그 단어가 너무 웃긴 거예요. (웃음) 피처링해야 하니까 이걸 라인에 꽂아 넣자고 하고 쓴 거죠. 되게 더러운 워드플레이이긴 했어요.



LE: 외부 작업 같은 것도 많이 하고 계시다고 했지만, 사실 쿤디판다라는 아티스트를 생각하면 요즘에는 싱글이나 EP로 결과물을 발표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늘 규모 있는 작품을 내려고 하신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떤 신념에 따라 그렇게 하시는 건지, 어떤 계획적인 움직임인 건지 싶더라구요.

두 개 다 될 수 있죠. 그런데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게 오롯이 전달되어야 하는데, 그게 싱글 하나로 전달될까 하면 전 아닌 거 같거든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요. 그래서 그냥 자연스럽게 싱글을 안 내는 추세로 가는 거죠. ‘싱글로 뭘 해?’ 이렇다기보다는 이 이야기는 싱글로 하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좀 크죠.



LE: 쿤디판다 씨의 음악을 들으면 빽빽하다는 인상이 많이 들어요. 사실 요즘은 랩 자체가 다양화되다 보니까 한 라인 안에 음절이 많지 않거나 한 경우도 있는데, 쿤디판다 씨는 한 곡에서 두 벌스는 기본이고 세 벌스까지도 꽉 채우는 스타일이잖아요. 갖고 계신 콘텐츠가 많은 것도 있지만, 음악을 함에 있어 일종의 강박 같은 것도 있다 싶기도 했어요.

사실 과하게 빽빽하죠. 그 강박이 ‘이 곡은 벌스 세 개로 채워야 해’ 이런 건 아니구요. 저도 필요 요소만큼 (가사를) 썼다면 벌스 하나 갖고도 끝낼 수 있어요. 다만, 전달하고자 하는 건 무조건 전달해야 해요. 듣는 사람이 가사를 중요시하게 여기는 이든, 아니든, 누가 제 가사를 흘려듣든 제가 그걸 제대로 안 하면 완벽한 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할 이야기 다 한단 말이에요. 보통은 한 스토리가 쭉 이어지고, 그걸 토막 내다 보니까 길이가 최대화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좀 빽빽한 느낌이 들지 않나 싶긴 해요.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무니까.



LE: 그래서인지 오피셜하게 음원 사이트를 통해 발표하는 작품과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라가는 믹스테입 사이에 그 경계가 그리 명확하지 않은 거 같기도 해요. 다 정규 작품 같은 느낌이 드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접근하시나요?

맞아요. 차이가 있다면, 사운드클라우드에는 믹스, 마스터가 덜 되어도 그냥 올리죠. 그래서 사운드클라우드 음원은 믹스, 마스터 때문에 불만일 때가 많은데요. 사람들이 SNS에 감성 글, 똥 글 쓰잖아요. 저는 그걸 사운드클라우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실 거 같아요.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모든 곡들은 믹스테입을 제외하면 거의 그날 작업해서 그날 올리는 것들이에요. 한 세네 시간 채 안 된 채로 작업 끝내고 올리는 건데, 그날 그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얘기한 걸 보면, 나 이래서 힘들다, 이래서 이 친구가 그립다, 이래서 난 얘가 썅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걸 그날 삘이 꽂혀서 그냥 쓰는 거예요. 근데 그런 부분으로 보았을 때 정규 앨범은, 비유하자면 스탠드업 코미디에 좀 더 가깝지 않나 싶어요. 왜냐하면, 스탠드업 코미디도 자기 이야기를 자유분방하게 하면서도 5, 6분 안에 주제가 휙휙 바뀌면서 1시간 안에 끝나잖아요. 하지만 그 각본은 짜여 있단 말이에요. 형태나 설계가 조금 더 있어요.



LE: 지금까지 발표하신 작품들이 믹스테입까지 포함하면 수가 꽤 되니까 본인 작품 중에 나답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그전에 자기 음악을 자주 들으시는 편인지도 궁금하구요.

제 음악을 자주 듣구요. 문제점을 찾기 위해서 듣는 경우가 많아요. (웃음) 제 음악을 온전하게 즐기는 경우는 술 먹고? 술 먹고 듣다 보면 ‘나 랩 되게 잘하는데?’라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어요. ‘여기서 이렇게 한다고? 장난 아닌데?’ 이러고. 뻔히 알고 있는데도 술을 마셨으니 기억이 안 나니까. 그런 경우 빼고는 웬만하면 설계적인 부분에서‘아, 여기서 박자를 좀 더 밀걸. 레이백을 줄걸’ 이런 걸 고민하다 보니까 많이 들어요. 제일 저답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부산물] 같은 거예요. 믹스테입 이름 자체가 부산물이잖아요. 영어로 하면 ‘by-product’인데, [가로사옥] 생각하면서 짜내다가 여과된 것들을 담아서 앨범으로써 푼 거예요. “실로”가 외국 알앤비 아티스트 인스트루멘탈 곡을 쓴 트랙인데, 그것만 없었어도 사실은 발매했었어도 됐어요. 허나, 믹스테입이라고 하는 그 개념 자체가 로우하고, 러프하고, 데모 느낌 나는 데다 ‘부산물’이라는 타이틀에 가까운 여과된 생각들도 데모스럽잖아요. 동시에 제가 주제적인 부분에서 결론을 짓지 못하고 끝낸 것도 타이틀에 딱 맞는 거 같아서 [부산물]에 제일 애착이 가요. [농]도 그만큼 애착이 가는데, 사운드적으로 애착이 더 가는 것뿐이에요. 주제적인 걸로 보았을 때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게 더 편해요.



LE: 작업하는 형태로 봤을 때, 1MC 1프로듀서도 한 번 해보셨고, 2MC도 한 번 해보셨잖아요. 그렇게 협업했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또, 혼자 작업했을 때와 아예 프로젝트로 누군가와 앨범을 작업할 때, 두 개를 놓고 보았을 때 어떤 쪽을 더 선호하시나요?

일단 1MC 1프로듀서랑 2MC로 하는 건 저에게 전혀 차이점이 없어요. 만약에 1MC 1프로듀서로 하면 프로듀서한테 제가 의도한 대로 비트를 바꿔 달라고 하거나 혼자 했을 때 기량 부족으로 인해서 비트 편곡적인 부분을 더해야 한다고 전달해야 하는 부분이 있죠. 그게 1MC 1MC로 갔을 때 제가 이런 주제로 가자고 하면서 타협점을 찾는 수고가 저한테는 거의 동등해요. 둘 다 피곤한 점은, 저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안 하면 절대 내지 말자는 주의인데요. 그랬을 때 상대방에게 제 고집에 따라 달라고 하는 거 자체가 그 사람들한테 큰 신세를 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게 좀 불편해요. 저는 혼자 하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물론, 곡 하나를 하고 이런 건 좋은데, 앨범이니까 이야기가 좀 다르죠.



LE: 협업하는 아티스트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본인 의지를 좀 더 밀어붙이는 스타일인가요, 아니면 양보도 좀 하시는 편인가요?

밀어붙이고 양보를 시킨다면 하자는 주의인데요. 보통은 제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강압적으로 뭉개버리는 느낌이 들까 봐 ‘난 이렇게 하고 싶은데, 너가 이렇게 하고 싶지 않으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얘기해요. 그러다 보니 의견이 더 조율이 안 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 제가 진짜로 그 주제를 혼자 풀었으면 지금처럼 나오면 안 돼요. 제가 곤조를 부려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밀어붙였겠죠. 근데 제가 헛물 켜서 ‘이 사람들이 강압적으로 느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걸 수도 있죠. 오히려 ‘이 주제를 확실하게 밀고 나가는 거 보니까 이거 꼭 이렇게 해야 하겠는데?’라고 생각하고 방향성이 더 잡힐 수도 있었겠죠. 그간 전 그걸 못한 거고, [농]도 거의 비슷했어요. 디젤(dsel)이랑 술 마시고 푸는 이야기를 술 많이 마시면서 같이 정했는데, 스토리 라인 같은 걸 제가 대충 짜고, 그 사이에서 더 섬세한 걸 짜놨어야 했지만, ‘이런 거까지 내가 하면 너무 내 스타일이지 않을까? 디젤의 역량이 나와야 하는데’ 싶었어요. 사실 전 저와 협업한 두 아티스트가 주목받는 데 목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두 앨범 다 비앙 X 쿤디판다, 디젤 X 쿤디판다에요. 저를 앞에 두면 사람들이 쿤디판다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이름을 앞에 썼어요. 허나, 그런 관점으로 봤을 때, 제가 조금 잘못 판단한 거 같아요.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만족하니까 낸 거긴 한데, 만약 제가 묵묵히 구조를 더 세심하게 짰다면 아마 더 좋은 찬사를 받고, 그것대로 비앙 형이랑 디젤이 더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기본적인 구조를 제가 다 짜면서 너무 조심스럽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일단 지금은 제 개인 정규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과연 제가 혼자서 만들어보는 것이 옳은가 틀린가를 알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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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농] 같은 경우에는, 말씀하신 대로 술자리 이야기가 진짜 많이 나오잖아요. [농]도 그렇고, 쿤디판다 씨의 많은 곡에서 술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오는데요. 개인적으로, 음악적으로 술이 주는 도움 같은 게 있나요? 개인적인 해소 방식, 탈출구인가 싶기도 했고, 어떤 음악적 영감이 된다든가 싶어서요.

전혀 없어요. 그냥 술 마시는 게 재미있어서 마시구요. 참 웃긴 이야긴데, 제가 올해 들어서 술을 정말 많이 마셨어요. [농]을 작업하면서도 그렇고, 끝나고 나서도 되게 많이 마셨구요. 결과적으로 보면, 가사에서 술 얘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제가 술을 마시고 다음 날에 후회하는 이야기에요. 후회할 짓을 하면 안 되는 건데, 마셔놓고 그 지랄을 하는 거죠. 술을 마시고 파멸하고 자멸하는 내용인데, 그걸 계속 쓰고 있는 거죠. 보통은 문제점이 있고 해결법도 알면 하면 안 되는 건데, 그만큼 올해 술에 의지했던 거 같아요. [농]은 조금 순화시켜서 이야기한 거고, 제 개인 정규에서도 술 마시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할 거예요. [농]으로만 보면, 술자리 같은 게 졸라 유쾌하게 병신 같은 느낌이 들지만, 술 마시고 사고도 꽤 쳤거든요. (개인 정규에서는) 그런 게 좀 더 반성한 느낌으로 나와야겠다 싶어요. 그게 아까 말씀드렸던 복현으로서 매듭지어야 할 이야기일 수도 있죠.



LE: 술자리를 많이 갖게 되면서 알게 된 뮤지션이 많아졌다든가 그렇진 않나요?

클럽에서 알게 된 뮤지션들? 아니면 술 마시고 더 친해진 사람들은 있죠. 술 마시고 이야기하면 다 재미있으니까요. 하하호호 하고 나면 되게 친해지거든요. 근데 의도하진 않아요. 사실 전 같이 마시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구요. 뱃사공 형 같은 경우에는 원래는 음악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클럽에서 둘 다 술에 꽤나 많이 취해서 얘기하다가 옆에 염따 형이 “뭐해, 말 놔” 이렇게 해서 뱃사공 형이 술 취한 채로 말을 놓은 다음에 그 후에 만날 때 조금 더 친해진 느낌은 있죠. 술 마실 때 그런 걸 계산할 여유가 없잖아요. 일단은 취하고 보자는 주의가 크잖아요.



LE: 그럼 스윙스 씨가 “이글루”에 참여하게 된 게 비슷한 루트로 친해져서 가능했던 건 아니었겠네요.

절대 아니에요. 저는 스윙스 형이랑은 전혀 안 친하구요. 앨범에 피처링한 건 디젤 그 친구가 저스트 뮤직 쪽이랑 연이 어느 정도 있어서요. 키드밀리(Kid Milli) 형도 있구요. 그 친구가 녹음을 받아주거나 비트를 몇 개 주고, 믹스 마스터를 한다든가 여러 가지 일을 그쪽이랑 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 둘의 로열티는 있었던 거 같아요.



LE: “이글루”라는 곡이 앨범 전체적으로 보면 의외의 콜라보 트랙처럼 볼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그래서 뭔가 일종의 작업 비화 같은 게 있을까 싶었거든요.

다른 비화는 있죠. 스토리가 직선적이잖아요. 1번 트랙 “Escape Plan”에서 얘기하는 내용은 꼰대 형님과의 클럽 술자리에서 도망쳐서 자리를 옮겨서 더 잘난 형을 모셔오는 저희가 상상한 정확한 그림이 있었어요. 잘 나가는 형 누가 있을까 해서 (스윙스 형이) 그 배역을 맡아준 거죠. 연극이라 치면, 스윙스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그 배역에 맞게 빌려 쓴 거죠. 사실 “Escape Plan”에 나오는 꼰대 형도 피처링으로 쓰려고 했어요. 그게 뱃사공 형이었어요. 이미지적으로 봤을 때 그게 맞았는데, 곡 구성을 보면 벌스 다음 벌스 릴레이로 하는데, 뱃사공 형이 나오는 것도 웃기고, 동시에 장치적으로 보았을 때 뱃사공 형을 남용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스윙스는 잘 나가고, 뱃사공은 병신이다 이렇게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비교, 대조되는 스토리다 보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어서 뱃사공 형한테는 양해를 구하고 파트를 빼기로 한 비화는 있죠.



LE: 스윙스 씨 포함해서 쿤디판다 씨가 소속된 집단 안이든, 바깥이든 함께 작업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아티스트가 있다면 누가 있을까요?

아직 안 나온 건데요. 제가 알기에는 예정된 발매 날짜가 지났어요. 프로듀서 중에 ‘조심’이라는 분이 있어요. 근데 그 분이 저랑 같은 동네에 살았었나 봐요. 수원시 영통구인데, 영통에 느티나무 수호수가 있었어요. 수호수라고 불릴 정도로 되게 크고, 한 560년 됐고 그래요. 저는 고3 끝날 때까지 그 동네에 살았는데, 중국 가기 전부터 그 느티나무를 봐왔죠. (조심이라는 분이) 저한테 메시지로 비트를 보내면서 그 느티나무를 아느냐고 하시더라구요. 이번에 태풍이 지나갔잖아요. 지나가면서 느티나무가 쓰러졌대요. 뿌리만 남아서 겨우 살아 있는 상태인데, 동네에서는 나무를 살리려고 하고 있대요. 그 느티나무에 쓰러진 거에 관해서 써달라고 하더라구요. 엄청 재미있었고, 실제로 제 마음에 드는 곡이 나왔어요. 뭘 생각할 필요도 없었어요. 오브제나 주제 생각할 필요 없이 곡 제목을 느티나무로 해서 그냥 그대로 썼어요. 심지어 곡이 킥도 없고 프리 템포에요. 박자를 맞출 필요도 없었고, 마치 연설하듯이 그냥 했어요. 근데 그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분도 되게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누군가가 저한테 작업을 부탁했을 때, 사실 주제를 정해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구요. 래퍼면 이미 주제를 정해서 저한테 오지만, 그 정도로 주제가 뚜렷한 적은 없었어요. 앞으로 제게 이런 우연찮은 작업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요. 같은 동네 살았던 사람이 기본적인 힙합 리듬도 없는 비트를 주고 느티나무에 관해 가사를 써달라고 할 확률은 거의 없지 않을까요?


♬ 릴 앵그리 버드 - PLAYNOMORE


LE: 릴 스파이더 레코드(LIL SPYDER RECORDS) 채널에 올라갔던 릴 앵그리 버드(LIL ANGRY BIRD)의 “PLAYNOMORE”도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물이었던 거 같아요. 그냥 재미로 한 거였나요?

그 계정은 일단 제 스트레스 해소용 계정이에요. 처음에는 원래 전국에 계신 트랩퍼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트랩이 얼마나 대단한 건가 싶어서 ‘노래 못 불러도 오토튠 사용하면 끝나는 거 아냐?’라는 생각으로 풍자하듯 만들었던 곡이에요. 만들다 보니 건드려야 할 부분들이 많더라구요. 가면 갈수록 처음과 다르게 연구용으로 트랩 듣다가 ‘이거 해볼까?’ 해서 만드는 데 초점이 가더라구요. 그래도 재미는 놓치지 않으려고 하구요. 보면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의 “XO Tour Llif3” 이런 걸 카피한 한국어 패러디 버전도 있어요. 스키 마스크 더 슬럼프 갓($ki Mask "The Slump God") 따라 하고, 스키 마스크 더 슬럼프 갓과 21 새비지(21 Savage)가 콜라보하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디젤이란 만든 것도 있구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만든 거면서 동시에 저와 전혀 다른 장르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작업하겠다는 시뮬레이팅도 되죠.



LE: 방금 언급해주신 아티스트들의 음악도 꽤 즐겨 들으시나요?

일단 스키 마스크 더 슬럼프 갓의 엄청난 팬이에요. 랩을 정말 말도 안 되게 잘하잖아요. 21 새비지는, 저는 처음에 멈블 래퍼들을 싫어했었어요. XXL 프레쉬맨(XXL Freshman) 싸이퍼 나왔을 때도 진짜 개병X 같다고 하면서 봤었어요. 나중에 보니까 릴 야티(Lil Yachty)였나, 21 새비지도 사실 그 싸이퍼 쓰레기였다고 하던데, 그때는 인식이 안 좋았다가 21 새비지가 대장장이 인터뷰하는 거 보고 음악을 다시 들었는데 되게 좋더라구요. 릴 우지 버트 같은 경우도 나브(Nav)랑 같이 한 트랙 엄청 좋게 들었구요. 오토튠 사용하는 포스트 말론(Post Malone)이나 OVO 사운드(OVO Sound) 음악도 나쁘지 않게 들었던 편이에요. 자주 듣지는 않는데, 이제 매력을 알아가는 중인 거죠.



LE: 그럼 자주 들으시는 아티스트나 앨범으로는 무엇이 있나요?

제가 궁극적으로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이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근데 켄드릭 라마보다 좀 더 깔끔하고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건 리틀 심즈(Little Simz). 사실은 맥 밀러(Mac Miller) 유작을 너무 좋아했는데, 돌아가셔서…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요. 동시에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의 [Flower Boy] 같은 것도 언젠가는 시도해보고 싶어요. 라이브의 질감을 갖고 오면서 그 위에 랩다운 랩을 얹는데 엄청나게 좋더라구요. 랩은 랩대로 하는데, 트렌디함은 트렌디함대로 가져가고, 그렇다고 만들기 쉬운 건 절대 아닌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만들기 쉬우면 변별력이 없잖아요.



LE: 켄드릭 라마의 세 작품 중에는 왠지 [good kid, m.A.A.d city]를 제일 좋아하실 거 같아요.

[good kid, m.A.A.d city]도 엄청 좋아하죠. 근데 사실 [To Pimp a Butterfly]가 서사적으로는 완벽하기 때문에 제일 좋아하구요. 사운드적인 것도 스톤 쓰로우 레코드(Stone Throw Records)스러운 질감이 더 많아요. 날리지(Knxwledge)가 “Momma”를 프로듀싱하기도 했고, “Wesley’s Theory”도 엄청 좋아하는 곡이구요. 그 질감을 좋아해서 [가로사옥]에서도 그런 류로 작업을 하려고 해요. 근데 스톤 쓰로우 레코드는 로우파이한 걸 좋아하잖아요. 저는 로우파이한 것에 한정되고 싶진 않아요. 리틀 심즈의 앨범이 더 상큼하게 느껴지는 게, 리틀 심즈는 하이파이한 데도 심오한 걸 하거든요. 전 그 두 개의 접점을 잡으려고 해요. 하이파이한데 좋은 거라면 또 앤더슨팩(Anderson .Paak)의 [Malibu]. 물론, 그 앨범은 하드웨어상으로 제가 절대 할 수 없는 거일 수도 있는데, 언젠가는 도전해봐야죠.



LE: 누구나 이야기하긴 하겠지만, 켄드릭 라마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게 특히나 쿤디판다 씨는 스토리적인 걸 중시하시다 보니까 그런 거 같아요.

사실 서사적인 거로만 보면,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가 엄청나잖아요. 저는 켄드릭 라마가 거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갔다고 느낌이 드는 건, 랩스킬적으로도 자기가 우월하다는 걸 보여줬잖아요. 켄드릭 라마와 에미넴(Eminem)의 라임 스킴(Scheme)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한국어로 랩하다 보면 라임을 여기 박고 저기 박고 할 순 있는데요. A로만 라임을 달리다가 B가 나오고, B-C로 가다가 다시 A로 라임이 돌아가면서 그사이에 변칙적으로 다른 라임을 꽂아 넣으면서 강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단 말이에요. 최근에 태균이 형이랑 심바 자와디 형이랑도 얘기했던 것 중 하나인데, 그걸 한국어로 가져올 수 있다면 각운이라는 측면에서 한 차원 더 고차원적여질 수 있어요. 그걸 지금 한국에서 하는 사람은 화나 형밖에 없어요. 그 형은 웬만하면 라임 하나로 달릴 때가 많지만, 이번에 나온 [FANAbyss]도 설명드린 대로 진행될 때가 많구요. 아무튼, 켄드릭 라마와 에미넴은 메인 라임과 서브 라임의 교차적인 스위칭이 엄청나게 현란해요. 그런 걸 공부하고 싶어요.



LE: 한국말 라임이라고 했을 때, 모음 위주로 구성된 라임이 정박으로 각 마디의 네 번째 박자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말씀하신 김태균 씨라든가, 화나 씨의 랩을 보면, 음절 단위로 발음을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혀서 연속적으로 운율을 만드는 케이스인 거 같아요.

그렇죠. 타격감을 연쇄적으로 주는 거죠. 어쨌든 라임이라는 건 들었을 때의 쾌감이 있어야 하는데요. 프리스타일도 똑같구요. 그런 부분은 정해진 틀 안에서 생각하면 안 되는 부분이에요. 특히나 요즘 래퍼들은 더 그러는데, 비트를 들었을 때 ‘이게 한 마디구나’라고 느껴지는 그 한 마디의 길이를 안 지켜요. 한 마디를 짧게 잡으면, 나머지 반 마디는 두 번째 마디를 한 마디 반의 길이로 사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반 마디를 하고 한 마디씩 해서 계속 남은 반 마디를 밀어 넣는다든지 하는 스타일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게 들리는 경우가 많단 말이에요. 그런 걸 보면 한국어로 가사를 쓸 때도 스킬적으로 더 세분화해서 라임을 꽂아 넣을 수 있고, 훨씬 더 많은 폼들이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점점 생겨날 거예요. 지금 <고등래퍼>만 봐도 엄청난 발전 아닐까요? 제가 한창 힙합 처음 들었을 때 세대만 해도 그 정도도 프로 취급받았던 거 같아요. 물론, 지금 <고등래퍼>들 중 대부분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상향평준화 되고 있어요. 제가 지금 이야기한 기술적인 이론들이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어느 정도 내재하는 시대가 온다면 계속해서 발전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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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젊고 어린 세대 쪽에서 많은 것이 발전하는 와중에도 쿤디판다 씨가 일종의 별종 같다 싶기도 해요. “RANDOMCALL”의 가사에서 “또 난 추구하지 컨셔스” 같은 가사도 그렇게 느껴지구요. 이 시대에 컨셔스함을 추구하는 쿤디판다 씨 또래의 젊은 래퍼가 있는가 생각해보면, 사실 명쾌하게 떠오르진 않는데 말이죠.

사실 [재건축]의 그 가사는 제가 써놓고서 후회하는 가사 중 하나에요. 계속 생각이 드는 게, 제가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서, 영향력을 위해서 든 이 지휘봉이 권력의 지팡이가 되면 그 순간 큰일 나는 거 같아요. 저도 저 모르게 그걸 남용하는 거죠. 컨셔스하다는 이미지를 제가 사용하는 거 같구요. 그래서 후회했어요. 제가 컨셔스하다고 얘기하는 순간에 스스로 컨셔스함을 강조하는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어차피 제 가사 보면 사람들이 쟤가 컨셔스하다는 건 알 텐데. 힙합이라는 게 애초에 유흥 문화에서 파생된 거기도 하구요. 처음에 파티로 시작된 건데, 저도 모르게 좀 더 진중함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하고, ‘이게 진짜고 나머지는 가짜야’라고 표현한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그건 아니거든요. 제가 최근에 술 마시고 클럽을 자주 가는데, 클럽에서 제 노래가 나오는 게 좋겠는가, 트랩퍼들 노래가 나오는 게 좋겠는가 하면 전 후자에요. 들었을 때 더 재미있거든요. (웃음) 영역이 다른 거죠. 저 같은 경우에는 이-북(E-Book) 느낌인 거죠. 이어폰 꽂고 들었을 때 엄청난 감동을 주고 싶은… 클럽, 유흥 문화에 필요한 신나는 것에 초점을 둔 음악들은 그것대로 장점을 살린 거죠. 그래서 제가 별종일 수는 있는데, “또 난 추구하지 컨셔스”라는 가사가 어떠한 우위를 나누는 잣대가 될까 봐 후회되는 건 좀 있어요. 사실은 다 똑같은데.



LE: 굳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쿤디판다 씨를 컨셔스한 경향으로 이끌어가게 하는 기제가 무엇일까요?

전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거짓말을 치잖아요. 그럼 한 달 정도를 꿍해 있는 거 같아요. 그 거짓말을 까먹을 때까지. 거짓말에 기억에 남는 이상 전 그걸 계속 생각해요. 언젠가는 그게 거짓말이었다고 이야기해야 할 거 같은 거죠. 그리고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잖아요. 제 성격상 그걸 받아들일 수 없더라구요. 결국엔 양심의 문제고, 죽을 때는 편하게 죽어야죠.



LE: 캉골과의 인터뷰에서 하셨던 정직하고 믿을 만한, 실망의 여지가 없는 래퍼가 되고 싶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겠네요.

그래서 제가 일부러 신비주의를 안 하려고 해요. 신비주의라는 게 있으면 그만큼 팬이 아티스트에게 기대하게 되는 게 있잖아요. 함부로 다가갈 수 없게 되는데, 제가 원하는 아티스트적인 이미지는 앨범을 듣고 노래를 들었을 때 그냥 옆에서 찡찡대는 친구거든요. 실제로는 저와 팬들 사이가 친구 사이는 아니기 때문에 찡찡댄다고 해서 그게 귀찮지도 않을 거예요. 들으면서 ‘이 사람은 이랬구나. 나도 그랬던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러면 앞으로 제 잘못과 과오를 이야기해도 제가 사람들한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겠죠. ‘그래, 얘는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하는 애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런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LE: 실망의 여지라는 말에 담긴 의미가 좀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 통상적으로는 대의를 잘 지키고, 소신 있게 정진하는 래퍼가 되고 싶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텐데요.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에요. 실망의 여지가 없는 건, ‘실망할 수 없는’이 아니라 실망할 것이 있어도 사람들이 제 밑바닥을 알고 저도 그 밑바닥보다 더 아래로 추락하지 않는 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저는 계속 잘못을 해요.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끊임없이 요구하죠. 근데 단적인 예로, 평소에 욕 한 마디도 안 하는 친구가 ‘X발’이라고 한 거 자체가 충격이잖아요. 저는 그게 실망의 여지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전 그 폭을 넓혀서 범위 안에 제 자조적임을 담고 싶은 거예요. 그 안에서만 이야기하고 싶구요.



LE: 최근으로 봤을 때, 쿤디판다 씨는 언제 스스로에게 혹은 사람에게 실망하나요?

스스로 지키자고 했을 때 못 지켰을 때요. 술 먹고 시비가 붙어요. 시비 붙으면 남이랑 싸우지 말자는 건 제 주의가 아니에요. 저는 싸우자 하면 싸워야 해요. 제가 육체적인 싸움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누군가 절 때리면 전 한 대 쳐야 해요. 물론, 최대한 말로 풀려고 하겠지만, 늘 그렇게 할 순 없으니까요. 제가 올해 정조 관념, 여자친구와 했었던 약속,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것들, 아니면 저희 부모님이 저에게 가르쳐주셨던 인간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몇 개를 깼단 말이에요. 깨고 나니까 인지 부조화가 장난 아니게 오더라구요. 꼭 술이 깨고 나서 후회해요. 술이 문제가 아니라 술버릇이 잘못된 거예요. 원래 술 마시기 전에는 ‘아, 나 술 마시고 사고 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데, 술을 마시고 나면 그 생각이 ‘술 마시고 사고 쳐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바뀌어요. 그 순간에 사람이 과감해져서 사고를 치고 다음 날 후회하게 되는 거예요. 근데 그걸 올해 꽤나 많이 반복했어요. 저랑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도 너무 많이 피해를 줬구요. 제 전 여자친구에게도 상처를 너무 많이 줬구요. 이런 걸 바로잡고 싶더라구요. 피곤한 일이어도 안 하면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LE: 가사에 남 욕 할 줄은 알았는데 나 자신을 탓하고 욕할 줄 몰랐고, 잘못을 인정할 줄 몰랐다는 내용도 있잖아요. 근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성을 참 많이 하시는 스타일이신 거 같은데요?

사실 저는 오늘 당장에라도 저녁에 그래도 다 X까라고 가사를 쓸 수도 있어요. 근데 삶의 모토가 점점 남들한테 피해 주지 말자는 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피해 주고 싶지 않고 누군가가 저한테 상처를 줘도 제가 동등하게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줄 권리가 있나 하면 전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어쩌면 태균이 형, 보석집 사람들이랑 자주 만나면서 (그런 거 같아요.) 또 그 형들이랑 만나면서 술버릇이 고쳐졌어요. 스스로 되게 비겁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형들이니까 제가 못 깝치더라구요. 그 형들 얘기하는 게 엄청 평화로워요. 마이노스(Minos) 형 같은 경우에는, 최근에 술 마시면서 이런 얘기를 해주셨는데요. 형이 자기한테 화가 옮겨올까 봐 화가 많은 사람을 적정선의 거리에 두려고 한대요. 왜냐하면, 그런 부정적인 에너지가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원동력이 되는지 아는데, 결국 남는 건 평화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제가 지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아요. 그 얘기를 듣고 있다 보면 스스로 반성하게 되는 거죠. ‘아, 그때 술 마실 때 확실히 내가 잘못한 거구나’ 하는 거죠.

지금 심바 자와디 형이랑 같이 사는데, 전 술을 마시고 그 형은 술을 끊었어요. 한 번은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서 깽판을 치니까 그 형이 다음 날 카페 가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자고 하더라구요. 제 스트레스는 자꾸 술로 쌓이는데, 술로 쌓인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거예요. <어린왕자>에 나오는 술주정뱅이처럼. 그거에 관해서 (심바 자와디 형이랑) 이야기했는데, 형이 제가 한 사람으로서 어디서부터 나오는 방어 기제이고, 행동 양상인지를 이야기해줬어요. 그러면서 형이 ‘나는 이미 너를 이 정도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이하 선으로 넘어가지 않는 이상 난 너한테 실망할 여지가 없다. 근데 너는 적정선을 더 넘지 않은 그 정도 행동을 해놓고서 다른 사람들이 너한테 실망을 할까 봐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거다. 아무튼, 나는 너를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너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 편이다’라는 식으로 얘기해주는데,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계속 행동을 다잡으려 하는 거 같아요.



LE: 그럼 쿤디판다 씨 자신의 이야기를 [가로사옥]까지도 하는 게 그런 태도가 생겨났으니까 그전까지 저질렀던 과오를 정리하는 차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가사로) 많이 쓰겠죠. 근데 결론은 무조건 있어요. 지금까지 앨범들에서는 결론이 없었는데요. 정신적인 고민과 역경을 겪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쓰다가 갈수록 머릿속에 결론이 점점 세워져서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사실 그래야 옴니버스 시리즈가 끝나잖아요. 아니면 다음 걸 또 만들어야죠. 이런 서사의 앨범들은 거의 모두 그렇게 끝나더라구요. 심바 자와디 형의 [Names]도 마지막에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이야기해서 힙합이라 굳게 믿었던, 자기가 좇으려 했던 허울뿐인 그 이름들 다 버리고 나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자기가 생각했던 힙합이었다는 것도 결국은 고난과 역경을 어느 정도 딛고 나서 극복해낸 거잖아요. 그게 사실은 기본적인 기승전결이니까 저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나오는 거 같아요.




LE: 이야기를 좀 전환해볼까요? 프리스타일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평소에 자주 연습하는 편이신가요?

비트를 틀고 랩을 하는 걸 좋아해요. 다만, 프리스타일은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혼자 하는 건 재미없어요. 같이 할 사람이 마땅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저만큼 프리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제 주위에는 없거든요. 올티 형이 있는데, 서로 스케줄이 있으니까 맨날 만나서 프리스타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남들이 보고 있거나 같이 즐겨줘야 하는 편이라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켜서 프리스타일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평소에도 엄청 즐기는 거 같아요.



LE: 랩, 힙합,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프리스타일을 하셨나요? 이런 쪽으로 재능이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도 있었을 거 같은데요.

경계가 모호하긴 한데, 아예 시작부터 프리스타일을 했던 건 아니구요. 깨작거리면서 가사 쓰기 시작하고 한 2, 3년 후부터 시작하긴 했어요. 그때 <마이크 스웨거> 시즌 1을 봤는데, 시즌 1에 번외편이 있어요. 술제이(Sool J) 씨가 어떻게 하면 프리스타일을 잘하는지에 관해 강의하는 영상인데요. 그 강의를 보면 지켜야 하는 게, 첫 번째로는 라임을 맞출 생각을 하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완벽하게 전달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해요. 그게 능숙해지면 그 이야기에 맞춰서 뒷마디에 라임을 넣는 연습을 하라고 하더라구요. 내용 먼저, 그다음 기술이란 이야기잖아요. 그게 진짜 도움이 많이 됐죠. 그러다 보니까 점점 여유가 생기는 거예요. 제가 봤을 때, 프리스타일은 재능이 아니에요. 연습의 문제이고,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LE: 멘탈도 굉장히 세야 하지 않나요?) 그건 배틀랩에 한한 이야기인데, 배틀랩이랑 일반 프리스타일은 달라요. 배틀랩은 주어진 시간 안에 상대방을 공격할 어조를 사용해야 해요. 그걸 정하는 건 그거대로 엄청난 순발력이 필요해요. 기본적으로 남 욕을 대놓고 잘하는 사람들이 잘하기도 하구요. 저는 못 해요.



LE: 그 멘탈이라고 말씀 드린 부분이, 일반 프리스타일이라고 하더라도 다음 라인, 다음 라인을 이어가면서 느끼게 되는 심리적 압박, 부담감을 견딜 수 있는가가 중요한 거 같아서요.

그게 괜찮은 게, 프리스타일이잖아요. 프리하게 하는 이야기인데, 평소에 도덕적으로 잘못된 언행을 일삼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랩을 할 때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그렇게 부담되지 않을 거예요. 기본적으로 래퍼들이 올티 형이 진행하는 <칠린데이즈(7INDAYS)> 섭외 요청이 들어왔을 때,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자기가 나갔을 때 ‘얘 프리스타일은 개못하네’라는 식으로 이미지가 소모될까 봐서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프리스타일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그 기준은 생각보다 굉장히 낮아요. 다만, 한국에서 프리스타일의 아이콘이 되는 사람들이 너무 잘하는 거죠. 허클베리피(Huckleberry P) 씨, 올티 형, 서출구(Xitsuh) 씨, JJK 형, 이런 사람들이 프리스타일을 워낙 잘하는 거죠. 래퍼들이 그걸 기준으로 잡고 ‘내가 이 사람들보다 못해서 좀 그런데?’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근데 일반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잘하는 거란 말이에요.

저는 외국 래퍼들이 라디오에 나와서 한 프리스타일 영상을 자주 보는데요. <Sway In The Morning>이든, 그런 게 되게 많잖아요. 보면 제가 결국 제일 좋아하는 건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에요. 근데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프리스타일은 한 번도 기술적으로 훌륭했던 적이 없어요. 그냥 아무 소리나 막 다 해요. 스튜디오에 있는 사람들 다 욕하고, 그러면서 엄청 재미있게 해요. 인토네이션도 재미있게 쓰구요. 그거 보고서 누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쓰레기라고 해요. 그게 진짜 프리스타일의 묘미죠. <칠린데이즈>도 그런 취지로 시작한 거라고 올티 형한테 들었어요. 그래서 전 너무 재미있었어요. 근데 그걸 즐기려면 프리스타일에 익숙해져야 하긴 하죠.



LE: 허클베리피 씨나, 올티 씨나, 서출구 씨나, 쿤디판다 씨처럼 프리스타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륏튼인지 퓨어인지 헷갈릴 정도로 가사 속에서 드러나는 문장력, 완결성이 있다 싶더라구요.

그것도 프리스타일을 자주 하면서 랩 메이킹을 하다 보니까 생기는 현상인데요. 일단 가사를 되게 빨리 써요. 하고 싶은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딱 정해지는데, 그게 프리스타일을 해서 생기는 속력인 거 같아요.



LE: 예전에는 프리스타일을 잘하는 래퍼는 스튜디오 래퍼로서는 부족하다는 편견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근데 한국만으로 한정해서 보았을 때, 프리스타일을 정말 잘하시는 분들은 스튜디오에서 짜인 랩을 뱉을 때와 프리스타일 사이에 간극이 크지 않고, 또 오히려 말씀하신 대로 그 양쪽 영역이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거 같기도 해요.

근데 어쨌든 프리스타일로만 커리어를 이어갈 순 없잖아요. 그 점에서 제가 술제이 씨가 찍으신 영상으로 프리스타일을 배웠지만, 그 분의 아티스트적인 커리어가 좋게 보이냐고 하면 아니에요. 반면, 단순한 말장난이나 프리스타일만 하려는 게 아니라 적어도 앨범으로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려 하면서 콘텐츠로서 보여주고자 하는 게 있는가를 생각하면 허클베리피 씨가 굉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허클베리피 씨도 <마이크 스웨거> 시즌 1 5편이 워낙 레전드여서 그 이야기를 꾸준히 하시지만, 그 분도 거기서 멈출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근데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별개로 프리스타일러로 이름이 있지 않고 그냥 륏튼으로 유명하고 저명한데, 엄청나게 프리스타일을 잘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마이크 스웨거> 시즌 1에서 숨겨진 레전드 편이 마이노스 형이 나온 9편이라고 생각해요. 전 그걸 더 많이 봤어요. 그 영상이 프리스타일로서 상당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요. 그 형이 그걸 퓨어라고 강조를 안해서 그렇지, 퓨어거든요. 그게 왜 대단하냐면, 프리스타일은 하고 싶은 말을 뱉다가 거기에 뒷마디에 라임을 붙이는 형식이에요. 하다 보면 라임이 생각이 안 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바뀌었을 때, 마치 갑자기 급하게 좌회전하듯 라임이 바뀌어버려요. 그런 데서 묘미를 찾는데, 정말 대단한 게 마이노스 형은 라임이 바뀌었다가 다시 첫 번째 라임으로 돌아와요. 이건 머릿속으로 라임을 연쇄적으로 계산한다는 거거든요. 형이 의도했을지 안 했을지는 몰라요. (웃음) 결국은 첫 번째 마디의 라임으로 프리스타일을 시작해서 라임이 A-A-A, B-B-B, C-C-C, A-A-A 하면서 끝나요. 진짜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 형이 프리스타일로 커리어를 이어가느냐고 하면 아니잖아요.



LE: 본인은 어떤 쪽인 거 같나요?

저는 작품으로서 이야기하는 게 훨씬 편하죠. <마이크 스웨거>가 이번 시즌에 가사를 자막으로 다 달잖아요. 근데 전 프리스타일은 안 달았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프리스타일은 가사로 봤을 때 륏튼가 차이가 너무 나요. 사족이 되는 어휘가 많고, 그걸 가사로 보면 형편없다고 생각해요. 제 진행법은 훌륭하다고 볼 수 있으나, 문학적을 봤을 때 좋은 표현은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도, 제 취향 자체는 륏튼으로 증명하고 싶은 쪽이지 않나 싶어요.




LE: <마이크 스웨거> 이번 시즌에서 재미있었던 게, 본인이 받았던 한국대중음악상을 낡아빠졌다고 표현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게 엄청 과감하고 용감한 말이 아닌가 싶었어요.

전혀 아니었어요. 그 “낡아빠진 대중상을 받아도”라는 가사는 진짜 한국대중음악상이 낡고 아무런 효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저는 상을 받았단 이유로 래퍼들에게 러브콜을 받은 적도 없고, 인터뷰도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마이크 스웨거> 같은 데 나와서 인터뷰가 두세 개 잡히고, 앨범을 냈을 때 잡히지, 그 상은 효력이 없단 말이에요. 근데 보통 사람들은 어떤 상을 받으면 그게 어떤 상징성이 있고, 얘가 진짜 잘 나간다고 생각하죠. 실제로 저랑 예전에 인터넷으로 교류했던 몇 명은 제가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급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게 아니에요. 상징이야 있을 수 있죠. 이 앨범을 그 평가단 쪽에서 좋아했다는 건 제가 충분히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어디서 연락이 왔냐 하면 그렇지 않고, 페이가 올랐냐 하면 아니에요. 엄마 아빠가 좋아했죠. 한국대중음악상이잖아요. 부모님한테는 이름만 보면 대한민국 전국에서 2017년에 나온 힙합 앨범 중에서 제일 좋았다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쇼미더머니> 나와서 싱글 하나 낸 것보다 제 앨범이 덜 팔려요. 그럼 (그 상이)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면 아니거든요. 더 이상 효력이 없어 보여요. 어디 가서 칭찬을 받을 때, 제 세대에서는 ‘얘 상 받은 애야’라고 하진 않아요. ‘얘 랩 잘해. 앨범 좋아. 많이 인정받았어’ 이런 식으로 칭찬받지, 상은 더 이상 먹히지 않더라구요. (상을) 받은 거 자체는 그때 받을 때도 그렇고 너무 감격이었는데, 돌이켜보니 일단 제 음악에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데에 그 상이 큰 도움이 안 됐어요. 비앙 형은 ‘와, 상 받았다. 좋다.’하고 말았어요. 트로피가 하나밖에 없어서 엄마 아빠 보여줘야겠다 해서 본가로 그 트로피를 들고 가서 한 번 보여주고, 다음 날 서울로 올라올 때 비앙 형이 운영하는 이태원 테이프(TAPE)에 갖다 줬어요.



LE: 그런데 음악 커뮤니티 쪽에서는 한국대중음악상 후보가 되니 마니, 상을 받니 마니로 이야기가 워낙 많은 데 말이죠.

인터넷 반응으로는 뻥튀기되는 게 많죠. 그것만 보면 사실 제 공연 예매율도 저조할 이유가 없어요. 왜냐하면, 슬슬 제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거든요. 근데 (현실은) 아니죠. 물론, 스물두 살에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다는 건 저에게 플러스이긴 하지만… 굳이 그걸 팔아먹고 싶지도 않아요.



LE: 프리스타일 이야기를 하다 어떻게 한국대중음악상 이야기까지 넘어왔네요. (웃음) 쿤디판다 씨에게 프리스타일이라는 게 굉장한 막강한 무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또, 음악을 내실 때 늘 콘텐츠가 꽉 차 있는 것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거 같구요. 항상 보여줄 수 있는 게 참 많은 아티스트이신 거 같아요.

올라운더 느낌이랄까요? <서든어택>이라고 치면, 총싸움도 있지만 칼전도 있잖아요. 전 다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다는 거 자체로 캐릭터의 스탯이 고평가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죠. 정작 사람들의 메인 픽, 첫 번째 픽은 안 돼요.



LE: 이것도 할 줄 알고, 저것도 할 줄 아는 느낌이다 이거네요. 욕심이 많아 보이시는 게, 아트워크 작업 같은 것도 하시잖아요. 아트워크에 초현실적인 느낌이 있는데요. 아트워크를 작업할 때의 마음가짐이나 이렇게 다양하게 이것저것 하는 목적이나 의도가 무엇인지 싶더라구요.

일단 아트워크를 제 부업이라고도 안 쳐요. 그건 팔지도 않구요. 누가 믹스테입 만든다, 커버 아트워크 도와달라 하면 그냥 해줘요. 물론, 제 마음에 어느 정도 들어야 하고, 아무나 만들어달라 해서 만들어주진 않지만요. 기본적으로 제가 보고 싶은 그림을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색감이 강해요. 전 강렬하게 다가오는 색들을 너무 좋아해요. 색의 조합도 좋아하구요. 누르스름한 황금빛과 연보라 느낌이 섞이면 엄청 예쁘더라구요. 그런 것도 좋아하고, 콜라주라고 하는 게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거잖아요. 그런 걸 하면서 스스로 재미있는 걸 만들어내려 하고, 대리 만족하는 거 같아요. 이미지 따와서 붙이고 하면서 응용한다는 거 자체가 어떻게 보면 비트 샘플링이랑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미지 크롭이나 사운드 샘플링이라는 기법이 매력적인 게, 기존에 있던 것에서 정보를 흡수해와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변환하는 거죠. 마치 재활용해서 다시 에너지로 바꿔 쓰는 것과 비슷하죠. 인생도 그렇잖아요. 역사가 그렇듯이 과거를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잖아요. 저는 (그 모든 게) 같은 맥락으로 보여서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아트워크를 만드는 게 재미있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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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아트워크와 랩의 각각 다른 매력은, 시신경이 관여되냐 안 되냐의 문제인데요. 색감이 대놓고 쫙 펼쳐지는 것도 그것대로 포만감을 줄 수 있어요. 하지만 포만감은 사실 한정되어 있어요. 그 이미지로만 느낄 수 있으니까요. 다만, 상상력이 다분한 사람일수록 제 가사만 보고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 많아진단 말이에요. 아까 “Ms. 808” 얘기가 나왔었는데, 제가 여자의 생김새를 이야기하진 않잖아요. 제가 만약 “Ms. 808”을 아트워크로 만든다면, 선공개 싱글 커버 아트워크처럼 어떤 여자가 들어갈 수 있잖아요. 그랬을 때 어떻게 보면 그 여자가 “Ms. 808”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장치가 될 수 있는데, 그게 시각적으로 줄 수 있는 한정된 작품이라면, 가사로만 봤을 때는 그 여자가 듣는 사람의 이상형이 될 수도 있고 계속 바뀔 수도 있잖아요. 그 여지를 준다는 거 자체가 가사의 매력이고, 그렇게 잘 안 되는 사람들한테는 자극적인 색채로 명확한 상을 줄 수 있는 게 아트워크라고 생각해요. 후자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저도 둘 다 좋아해서 두 개 다 하는 거죠.



LE: 시신경을 동원하는 계열이라고 하면, 아트워크도 있지만 뮤직비디오로도 욕심이 있으실 거 같아요.

영상에는 항상 욕심이 있는데요. 지금 당장은 하면 안 돼요. 영어 숙어 같은 거로 ‘Jacks of all trades’라고 했던 거 같은데, 재능이 엷게 펴져 있는 거예요. 여러 군데로 재능이 퍼져 있는데, 퍼져 있는 만큼 두께가 얇은 거죠. 근데 그렇게 되면 안 돼요. 그러면 어딜 가도 누군가를 제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전 아직 랩으로 넘어야 할 사람들이 많고, 앨범을 만드는 데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극점을 찍어보지도 못했어요. 아트워크도 똑같아요. 사실 아트워크 만들 때는 구글 기반으로 불법 샘플링해요. 그걸 어디다 팔고, 저를 어떻게 프로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아트워크를 부업으로도 생각하지 않고 돈도 안 받는 거예요. 예전에는 합법적인 크롭 샘플링을 해서 몇 번 판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절대로 안 해요. 아트워크 쪽도 나중에 정식 포토샵으로 더 해봐야죠. 언젠가는 다 해야죠. 다만, 제가 천재가 아닌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LE: 누가 보면 쿤디판다 씨가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통의 천재들은 커리어를 이렇게 시작 안 해요. 저는 좀 유별난 범재죠. 천재는 어쨌든 간에 완벽했을 거예요. 근데 전 천재라고 하기에는 꽤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미 천재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요. 천재는 한두 번 정도 실수할 수 있어요. 그 정도는 자기가 구상한 대로 안 나올 수 있지만, 한두 번을 통해서 (나중에는) 자기가 전달하고자 했고, 치밀하게 짜놓은 것들을 완벽하게 이행할 수 있어야 해요. 근데 전 그게 안 돼요. 전 말할 때도 수십 번이나 말을 정리해서 하는 사람이고, 제 지난 것들을 봐왔을 때 이미 천재에서 기준 미달이에요. 천부적인 재능파는 아니에요. 단,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닌 건 맞는 거 같아요. 남들이 하는 얘기가 있으면 그걸 캐치해오는 능력은 좋아요. 제 걸로 완벽하게 소화하는 건 아직 부족하구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할 거 같아요.



LE: 아트워크든, 뮤직비디오든, 많은 걸 염두에 두시는 게, 쿤디판다라는 아티스트가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가치가 명료하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형태야 계속 바뀌지만, 어쨌든 어떤 부분에서 심금을 울려야죠. 세상이 계속 바뀌잖아요. 핸드폰만 봐도 계속 바뀌고, 사는 방식도 계속 바뀌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항상 좋아하는 것들이 있단 말이에요. 연애 드라마 같은 것도 늘 똑같은 내용인데도 관통하는 게 있어요. 그것 말고도 감정을 잘 건드는 것들이 있죠. 그 감정이 사랑일 수도 있고, 공포일 수도 있죠. 제가 다루고자 하는 영역 안에서 그게 다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나중에 제가 진짜로 뮤직비디오 제작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식으로 편집되든 간에 나와야죠. 현란해 보이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어요. 어떠한 스토리를 짜고, 어떠한 부분에서 (감정을) 터지게 하고, 그런 게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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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양자택일” 가사에 보면, 내가 그린 20대 초반의 그림이 대학에 가는 게 아니었다고. 그래서 지금의 길을 선택했구요. 그 선택한 길에 따라서 20대 초반의 그림을 잘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잡은 기준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았어요. 제 기준은 20대 초반의 삶을 그 누구의 강요 없이 선택하는 거였고, 그 삶을 아직도 충분히 즐기고 있거든요. 그게 가슴 아픈 선택이 됐든, 행복한 선택이 됐든, 누릴 걸 누리고 갚아야 할 걸 갚든, 어쨌든 간에 제가 다 각오한 거라서 기준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았어요. 만약 제가 20대 초반에 대학을 안 가고서 음악을 하는데, 어떤 기획사에 들어가서 제가 원치도 않는 음악을 하면서 강요받았다면 전 아마 실패했다고 얘기했을 거예요. 근데 전 타협을 안 하는 부분은 안 하고, 타협하기로 선택한 것들은 타협하거든요. 그랬을 때, 아직은 스스로에게 배신감을 안 느껴요. 그래도 술 마시고 저질렀던 일들은 다신 하고 싶지 않죠.

근데 제가 최근에 20대 초반, 중반, 후반을 나누는 기준을 알았는데요. 그게 뭐, 뒷글자 받침 자음이 ‘ㄹ’일 때 초반이고, ‘ㅅ’일 때 중반이고, ‘ㅂ’일 때 후반이라고 하더라구요. 이게 맞는 거 같더라구요. 근데 그렇게 보면 전 이제 20대 초반이 끝나는데, [가로사옥]이 20대 초반에는 안 나와요. 20대 중반까지 가야 할 거 같은데, 그때는 완성되길 바라야죠. 내년 중반까지는 완성될 거예요. 왜냐하면, 이제 가사 쓰고 녹음만 하면 되는데, 프로듀서들한테 레퍼런스만 잡고 비트를 다 부탁해서 하나둘씩 다 넘어올 때가 됐어요. 넘어오는 순간에 믹스, 마스터 맡기면 끝나요.



LE: 뭐가 됐든, 내년에도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다 이거네요.

군대 가기 전까지는 절대 쉬면 안 되죠. 군대도 최대한 미루려고 생각은 하고 있구요. 아마 군대 갈 때쯤에는 재미있는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아요. 군대 갈 거까지 예상해서 비상 작업물들을 만들고 있거든요. (웃음)



LE: 인터뷰 막바지입니다. 조금 느리다고 할 순 있지만 묵묵히 나아가며 빛을 보고 계시는 중인데, 혹시 얼마만큼 주목받고 싶다고 정해놓으신 정도가 있을까요?

있는데, 가시적인 기준이 거의 없어요. 누군가가 제 음악을 들었다고 인스타그램 태그할 필요도 없어요. 근데 아티스트를 만나고, 인터뷰를 하다 보면 계속 언급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 사람은 이게 진짜 말도 안 된다고 하는 거죠. 요즘은 히피는 집시였다 형들이고, 선우정아 씨고, 국카스텐이죠.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의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안단 말이에요. 기본적으로 저한테는 영향을 줬잖아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암암리에 소문이 퍼지고, 그 사람이 왜 대단한지 알 수 있는 거죠. 자꾸 죽는 얘기 해서 죄송하긴 한데, 제가 죽었을 때쯤에 이런 진정성 있는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음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같이 슬퍼하고, 슬퍼하는 만큼 다른 새싹들이 피어났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럴 수 있게 하는 거름이 되어주고요.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공연을 했을 때 적어도 3, 400명 이상만 왔으면 좋겠어요. 게스트 아무도 없이 쿤디판다 공연이라고 했을 때요.



LE: 워낙 설계하시는 게 있으시니까 그걸 이루는 데에 어느 정도 걸릴 거 같다 하는 예상이 있을까요?

일단 제가 이빨이 다 빠져서 랩을 못 할 때쯤에는 되겠죠. 그게 이루어지는 건 말씀드렸듯이 제 눈에 보이지 않아요. 이 이야기가 인터뷰에 나왔을 때, 사람들한테 충분히 그만큼의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저는 안 느껴지는 거죠. 앞으로도 쭉 안 느껴질 거예요. 조금씩 공연 관객이 많아지면서 느껴지긴 하겠지만, 사실 전 제가 한국에서 공연을 하면서 3, 400명을 채울 수 있을까도 의문이에요. 그렇게 되면 전 고마울 거 같은데, 영향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되어도 느낄 수가 없어요. 제 영역이 아니에요. 만약에 그렇게 됐을 때, 이게 이루어졌냐 안 됐느냐의 여부는 죽을 때쯤에나 알겠죠. 지금까지 음악을 위해서 달려온 게 맞는 거였는지, 틀린 거였는지. 그때 가서 생각해도 문제없거든요. 돌이킬 이유도 없고, 좋은 싸움이었을 거예요.



LE: 참 쿤디판다 씨다운 답변이네요. (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꽤나 무겁게 이야기를 이어왔으니까 마무리는 좀 가볍게 해볼까 합니다. 쿤디판다 씨가 고양이를 엄청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어요. 쿤디판다 씨에게 고양이란 무엇인가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생명체죠. 신이 있다면 인간에게 부러움을 느끼라고 준 존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너무 예쁘고, 못생긴 고양이도 엄청 예뻐요. 근데 저한테 고양이는 인간의 성질, 성격의 모든 부분을 닮은 또 다른 존재 같아서 더 좋아하는 거 같아요. 애들이 되게 기회주의적이거든요. 밥 달라고 할 때만 오고, 자기가 외로움을 해소하고 싶을 때만 와서 애교 부리고. 한 번도 남이 자기한테 요구하는 걸 들어주지 않아요. 그게 너무 개인주의적인 사람 같이 느껴져요. 근데 사람은 못생겼으니까 미워진단 말이에요. 고양이들은 예쁘니까 그 미움이 다 용서가 돼요. 그래서 완벽한 생물체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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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Melo, snobbi, Kimioman

Photo ATO

2 추천 목록 스크랩신고 댓글 9 title: Kanye West - The Life of Pablo라이프오브타블로10.9 00:37 잘 읽었습니다. 가로사옥이 상당히 늦게 나올 것 같아서 아쉽네요. 공연 문화에 크게 관심을 안 가진 것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음악 기대합니다.


결국 결론은 고양이군요 ㅋㅋㅋㅋㅋㅋ

추천 댓글 무여비10.9 04:17 쿤디판다는 믿고듣는다

추천 댓글 라기씨 1 10.9 14:50 좋은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근데 읽다보니 인터뷰 내용과는 상관없이 에디터 분들께 건의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엘이 에디터분들른 외래어 표기가 과도하게 원어 발음을 의식하시는 거 같아요. 예전부터 그런 게 많이 보였는데 이 글에서도 Written을 '륏튼'이라고 쓰신 거 보고 생각났어요. 또 다른 데에서는 Black Thought을 '블랙 똗'이라고 하셨고...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고 계신 걸지도 모르겠는데, 어차피 한글로 완벽하게 전사하지 못할 원어 발음이라면 표준 표기로 통일하는 게 보편적이고 읽기 좋은 거 같습니다. 엘이 화이팅입니다.

추천 댓글 title: [회원구입불가]Melo10.9 17:24 @라기씨 안녕하세요, 힙합엘이 매거진 치프 에디터 멜로입니다. 편집에 관한 좋은 피드백 감사합니다. 편집자로서 늘 국립국어원이 제시하는 원론적인 표기와 발음과 실생활에서의 쓰임새에 따른 실질적인 표기 사이에서 나름대로 밸런스를 갖고자 고민하는데,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전달 주신 소중한 의견 잘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추천 댓글 title: Aminé롤롤이10.9 16:53 잘읽었습니다 쿤디판다 너무 멋있어요 근데 마지막이 고양이하나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네ㅋㅋㅋ

추천 댓글 title: 오왼 오바도즈DelecAble10.9 23:57 진솔함을 넘어서 쿤디판다를 거의 까발린 느낌이네요ㅋㅋ


잘 읽었습니다 공연은 못 가지만 앨범 항상 잘 듣고 있습니다

추천 댓글 말보로이스10.15 12:49 진짜 오랜만에 장문 인터뷰 꼼꼼히 정독했네요. 정말 솔직하고 공감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추천 댓글 title: Kendrick Lamar - DAMN.잔나비10.17 01:30 와..인터뷰 정말 잘 봤습니다 :)

추천 댓글 title: J. Cole (2)로수9.25 13:18 인터뷰 잘봤어요 via https://hiphople.com/interview/12713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