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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인터뷰 케이온 – 그냥 '랩퍼'이기 전에 난 '여자 랩퍼'

한국힙합위키
BOSS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4월 25일 (월) 17:44 판 (새 문서: 케이온 – 그냥 '랩퍼'이기 전에 난 '여자 랩퍼' 강일권, 신연수 작성 | 2014-07-02 07:31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30 | 스크랩스크랩 | 35,363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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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온 – 그냥 '랩퍼'이기 전에 난 '여자 랩퍼' 강일권, 신연수 작성 | 2014-07-02 07:31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30 | 스크랩스크랩 | 35,363 View


그동안 한국힙합 씬에 등장했던 여성 랩퍼들의 실력과 결과물의 수준은 기본에도 이르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런 그녀들이 이룬 성과와 팬들의 평가는 처참했다. 이런 상황에서 실로 얼마 만에 주목할만한 실력과 앨범을 들고 나온 여성 힙합 뮤지션인지 모르겠다. ‘왜 여자들은 그리 명품에 환장’하냐는 빈지노(Beenzino)의 물음에, 요즘 랩퍼들에 대한 되묻기로 재치 있게 받아치며 등장한 여성 랩퍼이자 프로듀서 케이온(Kayon). 첫 결과물로 들고 온 정규 앨범 [HOPE & TRUTH]는 비트부터 프로듀싱까지 그녀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무엇보다 앨범 내내 여성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여자 랩퍼’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 한 마디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여기 여성 랩퍼 5인으로 구성된 트리플엑스 트리플와이(XXXYYY)와 함께 한국 여성 힙합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고 싶다는 케이온의 겸손하면서도 배짱 두둑한 이야기들을 담아보았다.



리드머(이하 ‘리’): 반갑습니다. 이번 앨범 반응은 좀 어때요?


케이온(이하 ‘K’): 처음에는 정말 별 반응이 없었는데, 그래도 공연 다니면서 홍보도 하고, 지인들 통해서 들어주는 분들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어요. 리드머에서 리뷰가 올라온 이후에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좋다고 말해주는 것도 있고요.


리: 첫 결과물을 정규앨범으로 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K: 사실 참 고민이 많았어요. 처음 앨범 작업을 시작할 때는 믹스테입을 만들자는 생각이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지금껏 이 씬에서 아무런 결과물이 없었는데, 이렇게 바로 앨범을 들고 나와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또 요즘에는 믹스테입에도 오리지널 비트를 쓰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작업을 하다 보니까 제대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6, 7곡 정도로 EP를 낼까 했는데, 점점 비트가 하나 둘씩 쌓이다 보니 아예 정규로 내자는 확신이 들었어요. 제가 어느 정도 나이도 있어서 스스로 커리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좀 더 욕심을 부린 거죠.


리: 바람직한 욕심이네요. “Ubermensch”라는 곡은 어느 시점에 타이틀곡으로 정해진 거에요?


K: 곡을 쓸 때부터 이 노래가 타이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이 노래를 이번 앨범에서 네 번째 정도로 만들었는데, 완성하고 나서 확신을 했죠.


리: 아, 그럼 [HOPE & TRUTH]라는 앨범 타이틀도 비슷한 맥락에서 정해진 건가요?


K: 앨범 제목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건 작업 후반부에 정해졌어요. 어느 정도 트랙을 만들고 보니까 이번 앨범 자체가 저의 자전적 이야기고, 대부분이 긍정적인 내용이더라고요. [HOPE & TRUTH]라는 제목이 ‘희진’이라는 제 이름의 뜻이기도 하고, 긍정적이고 밝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적절하다 싶어서 붙였어요. 처음부터 이런 느낌으로 만든 앨범은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랑 안 어울리는 우울한 곡 하나는 빼게 됐어요.


리: “갖다버려”라는 보너스 트랙은 어떻게 싣게 된 거예요?


K: 다른 곡들은 모두 이번 앨범을 위해서 만들었는데, “갖다 버려”는 예전에 만든 곡이라 보너스 트랙으로 넣게 됐어요. 화나(FANA)씨가 주최했던 ‘걸마이티’에 내려고 만들었던 곡이에요.


리: 그때 성과가…?


K: 뽑히진 못했어요. (웃음) 하지만 곡 자체는 마음에 들어서 언젠가 꼭 발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방금 말한 우울한 곡을 빼면서, 그래도 한 곡 더 넣고 싶은 마음에 “갖다버려”를 좀 보완해서 싣게 됐어요. 전하고 비교해서 많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좀 더 정돈된 느낌이고요.


리: “Rewind the film”에서는 케이온 씨가 그동안 걸어온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힙합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뭐에요?


K: 고등학교 때는 댄서가 꿈이었어요. 원타임(1TYM)은 좋아했지만, 외국 힙합은 전혀 몰랐죠. 그런데 어느 날 팝핀을 하던 선배가 닥터 드레(Dr. Dre)의 “The Next Episode”에 안무를 짜왔는데, 그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은 거에요. 그때 꽂혀서 엄청 찾아 들었어요. 그러다가 2002년에 선배가 춤 공연을 한다고 해서 ‘아우성 힙합페스티벌’에 갔는데, 거기서 랩 공연들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그냥 음악으로만 듣다가 실제 공연을 접하니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힙합에 빠져서 막 따라 부르고 가사도 써보고 그런 게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리: 그때부터 비트도 만들기 시작했나요?


K: 비트를 본격적으로 만들게 된 계기는 따로 있어요. 제가 재수하던 시절에 더 콰이엇(The Quiett) 1집이 나왔어요. 그 앨범을 좋게 들었고, 또 비트랑 가사를 다 직접 만든다는 게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따라 하고 싶은 마음에 콰이엇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비트를 어떻게 만드냐, 어떤 프로그램을 쓰느냐 이런 기본적인 걸 물어보기도 했죠. 그땐 콰이엇 씨가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아서 일일이 답을 다 해줬거든요. (웃음) 그래서 덕분에 애플 스튜디오를 사용해서 비트를 하나씩 찍어보기 시작한 거죠. 내 비트를 만들어서 랩을 녹음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다 대학에 와서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힙합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리: 이 곡 가사에서도 그와 관련한 인용이 보이던데, 콰이엇 씨가 초기에 영향을 많이 끼쳤군요.


K: 네. 저한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좋아했던 뮤지션이에요. “Rewind the film”의 가사에도 그런 리스펙했던 부분을 표현했고요. 그래서 초반에는 저도 샘플링을 많이 했어요. 힙합 고유의 작법이니까. 그런데 제가 멋지게 잘 못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차라리 내가 직접 멜로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또 이번 앨범은 첫 앨범이기도 해서 제 고유의 사운드를 넣고 싶다는 생각에 샘플링은 좀 배제한 편이에요. 그래도 계속 만들고는 있어요.


리: '좋아했던'이란 표현이 걸리는군요. 지금은 아니라는 말씀? (웃음)


K: 음… 노코멘트할게요. (웃음)




리: 아까 말씀 중에 샘플링을 멋있게 하지 못해서 안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이건 정말 웃지 못할 경운데, 국내에서는 순수 작곡과 샘플링의 우열을 따지는 풍토가 있잖아요. 심지어 힙합 뮤지션이란 중에도 실제 연주, 혹은 작곡의 세계를 알고나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면서 샘플링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우가 있어요.


K: 전 절대 샘플링을 순수 작곡보다 낮게 평가하지 않아요. 샘플링 작법으로 잘 만드시는 분들을 정말 리스펙합니다. 소리헤다 씨나 마일드 비츠(Mild Beats) 씨 같은 분들이요. 그 분들은 LP 음반을 엄청나게 디깅(digging)하고, 그 샘플을 가공하는 데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력하잖아요. 그런 장인 정신은 비트메이커로서 엄청 존경할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잘할 수만 있으면 저도 갈고 닦아서 선보이고 싶어요. 아직 이렇게 대충 하는 식으로는 샘플링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싶어서 직접 만들고 있는 거죠.


리: 진심으로 기대하겠습니다. 케이온 씨의 샘플링 트랙. 그럼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영향받은 뮤지션이나 음악이 있다면 누구에요? 2000년대 후반의 드레이크(Drake)라든지 트렌디한 사운드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K: 랩 스타일은 동부 쪽을 더 선호하지만, 사운드는 닥터 드레나 퍼렐(Pharrell)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퍼커션을 많이 넣는 건 퍼렐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고, 악기 사용하는 건 닥터 드레의 영향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게 의도한 거라기보다는 워낙 많이 들어서 저에게 남아있는 것들이 자연스레 반영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리: 이번 앨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가사가 “Respect”이란 곡에 나오던데요. 빈지노(Beenzino)의 가사 ‘왜 여자들은 그리 명품에 환장해?’를 맞받아치는 ‘글쎄, 랩퍼들에게 물어봐 왜 환장해?’. 이 부분이요. 이 라인의 탄생 배경이 궁금하네요.


K: 그 가사는 사실 “Bubble Line”에 썼던 가사인데요. 피처링해준 얼라이(Alllie)의 가사에 비해서 제 부분이 너무 직설적인 어법이라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Respect”의 첫 번째 벌스(verse)로 가져왔어요. 명품을 밝히는 것에 대한 디스를 하고 싶었는데, 문득 빈지노의 라인이 떠올랐죠. 원래는 ‘왜 여자들은 그리 명품에 환장해?’ 다음에 ‘모순이 있네. 너는 지금 왜 그래?’라는 내용의, 빈지노 씨에게 되묻는 식의 가사였어요. 그런데 이건 너무 빈지노 디스 쪽으로만 비쳐질까봐 걱정되더라고요. 딱히 빈지노 씨를 겨냥해서 쓴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이것보다는 제가 여자임을 드러내면서, 여자인 내가 대답한다는 식으로 라인을 바꿨어요.


리: 그럼으로써 더 확장이 되고 기가 막힌 라인이 됐네요. 명품 밝히는 것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여 현재 한국 힙합 전체의 화두까지 건드리는….


K: “Respect”은 이번 앨범에서 비교적 가장 센 느낌의 곡이에요. 비트를 만들 때부터 여기엔 묵직한 주제로 가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가사를 쓸 당시에 한창 고민이 많았거든요. 한국 힙합 씬에 나오는 노래들이 너무 천편일률적이고, 또 프라이머리(Primary) 표절 논란으로 시끄러울 때였고, 거기에 여자 랩퍼들의 행보에 대한 고민까지 겹쳐져서 속이 너무 답답했어요. 그래서 한국 힙합 씬의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표현해보자는 전체적인 틀을 가지고, 제가 disrespect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쓰면서 고민이 진짜 많았어요. 뭔가 섣부르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너무 세게 말하기에는 좀 조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어서.


리: 가사를 쓸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뭐에요?


K: 저는 재치 있는 말장난이나 화려한 단어를 사용한 가사를 잘 못써요.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고요. 이번 앨범에서는 그냥 있는 그대로 저를 담아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저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왜 힙합을 하고, 그리고 지금 힙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제가 느끼는 바를 소신 있게 적는데 집중했어요. 이걸 발표했을 때 나 자신에게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리: 자기 이야기에 기반을 두는 것이 이번 앨범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평소에 추구하는 가사의 방향성인 건가요?


K: 네, 그렇죠.


리: 자기 과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가사도 안 쓰는 것 같은데….


K: 스웩 자체는 부정하지 않아요. 제 음악에도 스웩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진짜 자기가 가진 것들을 보여주는 게 진정한 스웩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가사에서 스웩을 외치지 않아도. 다만, 남발되는 스웩은 당연히 안 좋아하죠. 사실 제가 그런 식으로 자랑할게 많지 않기도 하고요. (웃음) 제가 자랑할 수 있는 건 내가 하고 있는 음악과 친구들이니까요. 이게 바로 제 스웩이에요.





리: 멋지네요. 플로우 면에선 어때요?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나, 롤 모델로 삼는 랩퍼가 있나요?


K: 플로우는 항상 고민을 해요. 제가 제일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거든요. 랩의 메시지나 라임 맞추는 건 자신이 있는데, 플로우는 좀 단조로운 것 같기도 하고 듣는 사람이 자칫 지루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 이전의 음악보다 더 신경을 썼어요. 솔직히 말하면 변주를 주고 싶어서 약간 억지스럽게 플로우를 바꾼 부분도 있어요. 그런데 그걸 리드머 리뷰에서 정확히 파악을 한 것 같더라고요. (웃음) 롤 모델이라면… 누군가를 롤 모델로 삼아서 따라 한다거나,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는 건 아니에요. 스스로 스타일을 구축해가고 있다고나 할까요? 다른 랩퍼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아, 이렇게도 구사할 수 있구나’하고 자연스럽게 영감을 받기는 하죠.


리: 앨범을 들었던 몇몇 사람은 케이온 씨가 중성적인 보이스의 남자 랩퍼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K: 제 목소리 톤이 아주 여성스러운 느낌은 아니죠. 그런데 저는 나름 여성성을 드러냈다고 생각하는데… (전원 웃음)


리: 그만큼 앨범에서 여성성이 의도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는 증거 중 하나겠죠. 이것이 앨범에서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했고요.


K: “Not FREAKY”는 제가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인데, 저를 가장 많이 드러냈어요. 일전에 졸리 브이(Jolly V)씨는 자신이 ‘여자 랩퍼’가 아니라 그냥 ‘랩퍼’라고 했는데, 전 당연히 제가 여자 랩퍼라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막 드러내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표현했어요.


리: 그렇다면, 여자 랩퍼로서 정식 데뷔 후 느낀 점이 있을 듯한데…. 한국에서 여성 힙합 뮤지션에 대해 호의적인 것 같지만, 음악에 관해선 굉장히 냉정한 편이잖아요. 물론, 세계적으로 여성 랩퍼들의 부진 시대이긴 하지만, 국내에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거든요. 아직도 '포스트 윤미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실제로 몇몇 여성 랩퍼들이 싱글을 내며 나왔다가 처참한 평가, 혹은 무관심 속에 사라졌고요.


K: 일단 힙합 씬의 큰 집단들은 남자 분들 위주잖아요. 그런 곳에 속하거나 친하지 않으면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가령 랩을 하는 사람들은 비트를 받는 것 자체가 힘들고요. 전부터 프로젝트 팀도 하고, 레이디 액션(여성 힙합 커뮤니티)에도 접촉하고, 홍대 프린지에서 공연도 하고 되는대로 이것저것 해봤거든요. 그런데 남성 뮤지션들과 소통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같이 음악 하는 비슷한 또래 남자들이면 바로 형, 동생 하면서 친구가 되고 그게 음악적으로도 이어질 수 있잖아요. 저는 여자라고 어려워하는 건지, 좀 다르게 보는 것 같더라고요. 크루를 만들고 나서도 다른 뮤지션들과 교류를 위해서 공연을 자주 다니는데, 역시 마찬가지에요. 저희가 먼저 다가가도 반응이 시큰둥해요. 결국, 이런 폐쇄적인 상황이 ‘내 것’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어요.


리: 그렇군요. 여성 랩퍼가 워낙 드물어서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호의적인 편인 줄 알았는데요.


Alllie(이하 ‘A’): 같은 일원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아요. 여자라서 음악적으로 무시한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닌데,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있죠.


리: 그럼 여자 랩퍼들끼리의 교류는 어떤 편이에요?


K: 여자 랩퍼들끼리도 교류가 별로 없어요. 공연을 다니면 저희 말고도 여자 랩퍼들이 꼭 한두 팀씩 더 있거든요. ‘힘든 상황에서 저 사람들도 열심히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무척 반가워요. 그래서 먼저 다가가도 미지근한 반응이에요. 별로 잘 뭉치는 분위기는 아닌 듯해요.

리: 근데 그 부분은 남녀를 떠나서 신인 뮤지션들 대부분이 겪는 어려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른바 ‘인맥 힙합’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도 케이온 씨는 크루가 있어서 덜 외롭겠어요. ' XXXYYY', 이름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요? 트리플엑스 트리플와이? 엑스엑스엑스 와이와이와이?


(이때 동석했던 같은 크루의 멤버 얼라이 씨가 치고 들어오며)


얼라이(Alllie/이하 'A'): 트리플엑스 트리플와이(XXXYYY)요. (웃음)


리: 소개 좀 해주세요.


K: 다섯 명의 여자 랩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같은 힙합 동아리에서 만난 사이에요. 사실 꼭 여자가 아니라도 여러 사람들과 크루를 같이 키워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그런 분들을 찾기 힘들어서. 요즘은 저희끼리 하는 것에 더 만족을 느끼고 있고요.

리: 다섯 명이면 인원이 적지 않은 크루네요. 크루에 들어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요? 실력?


K: 실력보다는 음악적인 태도가 더 중요해요. 실력은 판단하는 기준이 애매할 수 있잖아요. 그저 음악을 진지하게 하고자 하는 태도와 생각이 잘 맞으면 긍정적이라고 봐요. 사실 저희가 음악스타일이 서로 엄청 잘 맞는 것도 아니고, 많이 친해서 뭉친 것도 아니에요.


A: 하면서 친해진 거죠. 지금도 안 친한가? (웃음) 저희는 정말 생각이 비슷해요. 그리고 서로의 다른 생각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존중할만하다고 느끼고 있고요. 그런 면에서 잘 맞아요. 우리는 나이 상관없이 다 친구에요.


리: 매우 관대한 크루네요. (전원 웃음) 그럼 XXXYYY는 친목뿐만 아니라 차후 음악 비즈니스까지도 계획이 있는 건가요?


A: 저희가 처음 모인 이유는 인맥도 없고 아무런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의 기반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그리고 꿈이 있다면 나중에 기반을 탄탄하게 쌓아서 다른 힘들어하는 여자 랩퍼나 언더 랩퍼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요.


리: 아무쪼록 여성 크루로서 한국 힙합 씬에 새로운 파동을 일으켜주길 바랍니다.


A: 네. 저희 꿈이기도 해요. 개개인이 잘 되는 것도 꿈이지만, 우리는 항상 공연 다닐 때도 크루로 움직이고, 크루 활동 자체를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어요. 오늘 인터뷰에도 같이 왔잖아요. (웃음)




리: 크루 공연도 종종 하나요?


K: 아직 크루의 독자적인 공연은 아니고 라인업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한 달에 두세 번씩은 꾸준히 해요. MC로서 경험도 쌓고, 홍보도 하고, 다른 뮤지션들과 교류도 하기 위해서요. 홍대에서 대관료를 모아서 하는 공연에 참가하기도 하는데, 그런 데서 알게 된 뮤지션들이 가끔 자기들이 주최하는 공연에 불러주기도 해요. 아, 그리고 8월 17일에는 홍대 ‘긱 라이브 하우스’에서 저희가 주최하는 공연이 있습니다. 그동안 같이 공연을 했던 크루나 랩퍼들을 초대해서 공연을 열 계획이에요.


리: 오 꼭 보고 싶은 공연이네요. 돈 내고 가겠습니다.


A: 어… 무료 공연인데, 돈 주시면 좋고요. (웃음)


리: 아… 그럼 화제를 좀 바꿔서요, (웃음) 요즘 다른 여자 랩퍼들의 수준은 어떻다고 생각해요?


K: 아직 수준을 논하기도 애매한 상황인 것 같아요. 저도 같은 여자니까 언제나 여성 랩퍼에 관한 소식을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일단 수적 열세도 있지만, 결과물 자체도 싱글로만 나오고 제대로 된 앨범이 거의 없으니까요. 아직 확 멋있다는 뮤지션은 없는 것 같아요. 아, 슬릭(Sleeq) 씨 작업은 정말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외 몇몇 분들의 싱글도 나올 때마다 들어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bad bitch’ 스타일은 지양하는 편이에요. “Respect” 두 번째 벌스 앞부분에도 그런 분들을 향한 가사가 살짝 나와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리: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성적 이미지나 'Bitch'를 내세우며 어필하는 게 위험하죠. 순식간에 잘못 전달될 수도 있고요.


K: 그래서 전 그런 식의 노래는 만들지 않을 거에요. 물론, 섹스 어필 자체가 나쁘다는 건 전혀 아니에요. 다만 스스로를 ‘bitch’라고 칭하는 것의 의도가 잘 이해가 안가요. 흑인 여자 랩퍼들이 스스로 ‘bitch’라고 말하는 건 전혀 다른 맥락인데, 그걸 막연히 ‘센 언니’ 이미지로 가져와서 남용을 한다는 게 어이 없어요. 맥락을 알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들 스스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A: 어, 그런데 저는 “Bubble Line”에서 ‘bitch’라는 단어를 썼는데요. 저는 그런 단어를 아예 안 쓰려고 작정하지는 않아요. 물론, ‘나는 센 언니야’라고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고요. 전 정말 ‘bitch’처럼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편집자 주: 섹스 어필적이거나 센 언니임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bitch'), 제가 그 단어를 내뱉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어색함이 재미있어요.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그 단어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고. 저는 앞으로도 재미로 쓸 생각이에요.


리: 아 아까 말한대로 이렇게 서로 생각이 다르군요. 디스 직전이네요. (전원 웃음) 말 나온 김에 작년 여자 랩퍼들 사이에 있었던 디스전은 어떻게 봤어요?


K: 그게 좀 화제가 됐었잖아요. 같은 여자 랩퍼로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졸리 브이 씨가 처음 곡을 터뜨렸는데, 그 문제의식 자체에는 저도 동의하는 바가 없지 않았어요. 워낙 여자 랩퍼들 분위기가 방금 말한 섹스 어필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그런 곡이 하나쯤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반격이 상당히 궁금했는데… 그랬는데…


리: 말을 잇지 못 하는군요….


K: 처음에야 어이 없어서 엄청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되게 씁쓸했어요. 그 음악 자체도 그랬지만, 거기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사람들이 여자 랩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그리고 여자 랩퍼들 자신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어요.


리: 한국 힙합 씬에서 여자 랩퍼들이 활동을 하고 더 나아가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요?


K: 소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칫 잘못하면 상품화되기 십상인 상황이잖아요. 스스로 밀고 나가든지, 아니면 자신의 소신을 지켜주는 회사를 들어가든지. 자기 스스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리: 앞으로 계획이 듣고 싶네요. 케이온 씨와 크루 둘 다요.


K: 일단 저는 앨범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다음 앨범을 구상하기보다는 크루의 작업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요. 프로듀싱이나 엔지니어링 쪽으로 매진을 많이 할 거고요. 그러니까 제 계획이 곧 크루 계획이 되겠네요. 올해 10월 전후 발표를 목표로 얼라이의 EP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리고 크루가 돌아가면서 한 달에 한 곡씩 발표하는 'monthly 프로젝트'도 계획하고 있어요.


리: 공격적인 활동과 결과물 기대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K: 요즘 들어서 한국 힙합이 많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힙합 장르 자체를 친숙하게 여기면서 상당히 대중화되었잖아요. 일반 가요에도 자주 삽입되고. 뮤지션들이 이럴 때일수록 고민을 더 하고 소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변두리에 있는 여자 랩퍼 분들 힘내시고요, 음악을 진지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분들은 저희 음악 들어보시고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저희도 항상 교류하고 싶습니다. 전 제 음악과 소신에 자신이 있어요. 한국 힙합 씬의 여자 랩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항상 열심히 하겠습니다. 뚝심 있는 음악으로 증명해드릴게요.


리: 응원할게요. 참, 근데 만약 활동하다가 메이저 기획사나 음원 차트를 노리는 방향에서 손길이 온다면, 어디까지 타협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K: 일단 돈을 벌려고 음악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만든 음악으로 돈을 버는 건 좋은 일이죠. 그걸 추구할 거예요. 하지만 단지 돈을 만들기 위한 음악은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조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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